거미와 파리
메리 호위트 시ㆍ토니 디터리지 그림ㆍ장경렬 옮김
열린어린이ㆍ36쪽ㆍ1만2,000원
어떤 어른에게는 달콤한 케이크 조각 한 입이 가장 강렬한 유혹이고, 어떤 아이에게는 자기 말대로 안 놀아주는 친구를 한 대 치는 것이 참기 어려운 유혹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내부와 외부의 온갖 유혹에 맞서 자기의 도덕과 진리를 지켜내어야 한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아첨꾼 거미 신사의 유혹에 넘어가 마침내 목숨을 잃는 파리 아가씨의 우화를 노래한 메리 보탐 호위트의 시 ‘거미와 파리’는 끊임없이 먹이를 탐하는 포식자-거미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파리 아가씨, 내 응접실로 모셔도 될까?’ 그러면서 거미는 자기 응접실이 얼마나 근사한지, 거기에 재미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처음엔 파리 아가씨도 거미 신사에 대한 무서운 소문을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러나 뻔뻔한 유혹은 차근차근 여유롭게 파리 아가씨의 마음을 공략해간다. 고단한 날갯짓을 쉴 수 있는 아늑한 침대, 따스하고 포근한 이불, 근사한 요리가 차려진 식탁과 맛난 것들이 그득한 식품 보관 창고… 온갖 달콤한 미끼에도 파리 아가씨는 애써 저항해 발길을 돌리지만, 자기의 아름다움을 거듭 찬양하는 거미의 아첨 앞에서는 무너지고 만다.
결말이 뻔한 이야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쫓아가게 만드는 대화체 시의 긴장감, 그 매력을 한껏 살려낸 연극ㆍ영화적 연출, 그에 의해 온종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게끔 풍성하게 구현한 흑백 그림 장면들을 보면 그림 작가가 스스로 쓴 듯이 곱씹으며 사랑해왔지 싶다. 마지막 장면은 원작 시에는 없는 토니 디터리지의 창작이다. 파리 아가씨의 묘비, 그에 새겨진 묘비명-‘사악한 아첨꾼의 말에는/ 마음과 귀와 눈을 닫을지어다./ 그리고 이 거미와 파리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을지어다./ 고이 잠드소서’ 유령이 되어 자기 묘비명을 읽고 있는 파리 아가씨의 뒷모습은 가히 화룡점정이다.
매력적인 블랙 유머로 이름난 그림책 작가 레인 스미스가 ‘즐거울 정도로 오싹한 우화…아름답고 극적인, 사랑스런 흑백 그림들!’이라고 한 데 공감의 한 표를 던지면서, 집요한 아첨에 무너진 이 멸망을 기억해두자. 우리의 생명과 진리를 노리는 거미 신사들의 목소리, 전쟁이 평화를 위한 것이며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은 오직 전쟁뿐이라고 집요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마음과 귀와 눈을 닫자.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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