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30ㆍ여)씨는 지난해 4월 서울 성북동에서 소위 ‘작은 결혼식’을 치렀다. 이날 초대된 하객은 양가 친ㆍ인척을 합쳐 70명. 외국인 남편과 결혼해 신랑 쪽 하객 수가 적은 데다 허례허식으로 비판 받는 한국식 결혼 문화에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에 선택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박씨의 기대와 딴판이었다. 식당을 빌리는 대관료만 70만원을 지불했고, 식대도 일반 예식장의 3배 수준인 1인분 13만원에 달했다. 메이크업, 드레스 등 기타 비용까지 포함해 박씨는 하루 결혼식 비용으로 1,000여만원을 지출해야 했다. 박씨는 18일 “원래 축의금을 받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가장 가까운 분들만 모실 계획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배보다 배꼽이 큰, 무늬만 작은 결혼식이 됐다”고 푸념했다.
혼인의 의미를 되새기고 결혼 예식의 거품을 빼자는 취지로 시작된 작은 결혼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고 유명 연예인 커플들도 작은 결혼식 열풍에 동참하면서 일반인 사이에서도 결혼식의 롤모델로 자리잡았다. 실제 지난해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기혼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다시 결혼하면 예식 비용을 최소화하겠다’고 답할 정도로 작은 결혼식에 대한 수요는 높아지는 추세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원하는 의미 있고 비용 적게 드는 ‘진짜’ 작은 결혼식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불만이 무성하다. 정선아(28ㆍ여)씨는 3개월 전 결혼 준비 당시를 떠올리면 씁쓸하기만 하다. 그 역시 작은 결혼식을 여기저기 수소문하다 이내 접을 수밖에 없었다. 혀를 내두를 정도의 비용 탓이었다. 식대를 포함해 정씨 부부가 계획한 예식비 예산은 500만원이었지만 서울 도심의 ‘하우스 웨딩홀(집처럼 꾸며 놓은 소규모 예식장)’들은 식대만 보통 800만원을 요구했다. 결국 부부는 식대 4만원인 일반 예식장에 400여명을 초청해 식을 올렸다. 정씨는 “작은 결혼식은 여유 있는 사람들의 말장난에 불과했다”며 “서민들은 차라리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많은 사람 초청해 축의금을 많이 받는 기존 결혼식 방식이 이득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작은 결혼식의 함정은 여기 숨어 있다. 흔히 소규모 식장에서 하객을 소수만 부르는 예식을 작은 결혼식으로 인식하지만 시장 자체가 워낙 고가 형태로 형성돼 일반인들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14일 막을 내린 ‘2016 서울웨딩페어’에 참가한 업체 중 하객 50~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하우스 웨딩홀들의 대관료는 대부분 100만원을 훌쩍 넘었다. 일반 예식장처럼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꽃 장식 비용도 물론 따로 지불해야 한다. 한 웨딩업계 관계자는 “하객 인원이 줄어들면 웨딩 업체들은 식대나 꽃장식 가격을 일반 결혼식보다 높게 책정해 수익을 창출할 수밖에 없다”며 “작은 결혼식 시장을 노린 유명 호텔들도 회의 공간을 예식장으로 개조해 비싼 대관료를 받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호화판 작은 결혼식 대안으로 부부가 모든 과정을 직접 준비하는‘셀프 웨딩’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나 대부분 예비 부부들은 바쁜 일상에 쫓겨 시간이 부족하고, 품질도 보장할 수 없어 찾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승신 건국대학교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작은 결혼식이 생겨난 이유는 ‘작다’의 의미가 생산자나 소비자들에게 왜곡돼 알려졌기 때문”이라며 “작은 결혼식의 의미에 걸맞게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웨딩 환경이 조성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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