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래 최악의 철도사고인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13주기를 맞았다. 대구에선 올해도 어김없이 추모제가 열렸다. 희생자들이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보낸 문자 메시지가 주는 뭉클함은 세월의 더께 따위가 덮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아침에 화내고 나와서 미안해. 진심이 아니었어. 자기야 사랑해 영원히”라는 잔잔함에도, “만약에 내가 내일 당장 없다면 넌 어떻게 할거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ㅎㅎㅎ”라는 장난스러움에도, “ㅋㅋㅋㅋ기다리지마 ㅋㅋ 안갈거야 ㅋㅋ 너 질렸어 ㅋㅋㅋㅋㅋㅋㅋ 뿅뿅뿅”이라는 위악적인 메시지에서조차 한결같이 먹먹함이 느껴진다. 매캐한 연기와 뜨거운 열기, 유독가스로 혼미해진 정신 속에서 아비규환의 참상을 겪었을 이들이다.
준비할 시간 없이 한 순간에 소중한 걸 잃게 되고 마는 게 사고(事故)다. 하지만 사고가 났다고 해서 희망이 모두 사라져버리는 건 아니다. 사고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지 차이로 달라진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사고에 대응하는 ‘참 나쁜’ 사례였다. 승객들은 객차에 갇혔고, 기관사와 종합상황실이 대피 여부를 결정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동안 불은 삽시간에 번졌다. 기관사가 전원키를 가지고 현장을 빠져나간 탓에 열차 문을 열지 못한 많은 승객들이 변을 당했다. 이 사고로 목숨을 잃은 192명 중 열차 내에서 숨진 사람이 142명이었다.
사고에 잘 대처하기 위해선 반복 숙달하는 수밖에 없다. 체험이 힘들다면 머리로라도 숙지하고 있어야 상황이 닥쳤을 때 덜 당황할 수 있다. 아래 소개할 ‘지하철 화재 대응 방법’은 일반적인 화재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다.
1. 화재 사실을 알린다
상황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 가장 먼저 알릴 곳은 집에 계신 부모님이 아니라 기관사다. 객실 양 끝에 설치된 승객용 비상인터폰을 이용한다. 기관사가 도망갈 상황을 대비해 119에도 신고한다.
2. 소화기를 이용해 불을 끈다
작은 불씨일 땐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소화기로 불을 끈다. 이 때 중요한 건 판단력과 경험. 불을 꺼야 할지 대피해야 할지 판단하고, 소화기를 다룰 줄 모른다면 섣불리 나서지 않는 게 낫다.
3. 대피방법을 정확히 익혀 둔다
불길이 번진다면 열차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대구 사고 당시에도 승객의 절반 가까이(48%)가 화재 사실을 알고도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화재로 정전이 됐다면 수동으로 출입문을 열어야 한다. 비상 코크를 잡아 당긴 후 공기가 빠지는 소리가 멈출 때까지 3~10초간 기다려야 한다. 열차와 역에 따라 출입문과 스크린도어 개폐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선로 위로 대피했을 땐 화재 현장 반대쪽으로 대피해야 한다. 터널 속에서 화재가 나면 불이 난 방향 쪽으로 바람이 불기 때문에 유독가스로부터 피할 수 있다. 전동차가 다가오면 선로 옆 비상점검 통로로 대피할 수 있다.
4. 이기심을 버린다
혼자 살려는 욕심은 혼란을 초래한다. 위기 상황에서 ‘질서=생존’이다. 구조요원이나 리더의 안내에 따라 침착하게 대피한다.
5. 호흡과 시야를 확보한다
화재 시 질식사 비율이 가장 높다. 앞이 안 보이면 행동에 제약이 크다. 열기와 연기는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다. 최대한 자세를 낮춰 연기 아래로 움직인다. 손수건이나 옷 소매로 입과 코를 막아 유독가스 흡입을 최소화한다. 손수건이나 휴지를 16겹 정도로 접어 코에 대고 입을 닫은 채 코로 숨 쉬면 방독면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정전을 대비해 스마트폰의 손전등 기능 활용법을 익혀둔다. 역사 내 휴대용 비상 조명등은 찾기 힘들고, 비상구 유도등은 잘 안 보인다. 대구 사고 생존자 중 ‘비상구 유도등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또는 ‘모르겠다’는 응답자가 95%에 달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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