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 절감” 부결에도 계속 추진
주민들 찬반 나뉘어 갈등 잦아
경비원들은 해고될까 노심초사
지자체는 오해 우려해 중재 못나서
최근 대단지 아파트들이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무인 경비시스템을 속속 도입하면서 가뜩이나 낮은 급여와 주민들의 냉대에 지친 경비원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급기야 무인 시스템 설치를 놓고 불거진 아파트 주민들간 분쟁이 법적 소송으로 비화하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서울 강서구 D아파트 주민들은 15일 입주자 대표회의와 회장 김모(61)씨를 상대로 서울 남부지법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D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는 2014년부터 “통합전자보안시스템을 도입해 연간 5억원 가량 인건비를 절감하자”며 시스템 도입을 주장했다. 이럴 경우 현재 2교대로 근무하는 44명의 경비원은 12명으로 줄게 된다. 그러나 이 안건은 세 차례 주민투표에서 모두 부결됐다. 주민들은 입주자 대표회의측이 주민들의 의사를 충분히 묻지 않았고, 고령인 경비원들의 고용불안을 우려해 번번이 안건을 부결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갈등은 주민 간 법적ㆍ감정적 싸움으로 변했다. 소송을 제기한 민모(47)씨는 17일 “한 번 부결된 사항을 계속 투표하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 찬성 측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통합시스템 설치에 찬성하는 김모(57)씨는 “경비원들이 고령인 상황에서 새로운 시스템이 비용 절감은 물론, 보안에 탁월할 텐데 반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비원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해고의 칼 바람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경비원 B(71)씨는 “저희는 단순한 보안요원이 아니라 주민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도와주는 또 다른 가족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민들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경비원 해고 논란은 비단 D아파트 만의 일이 아니다. 서초구 우면동 K아파트도 지난해 11월 무인 경비시스템 도입과 함께 경비원을 12명에서 8명으로 줄이기 위해 해고를 통지했으나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며 주민의 80%가량이 반대해 보류된 상태다. K아파트의 한 경비원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파리목숨이라 매사 잘못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서울 중계동 S아파트는 주민 동의서명을 통해 지난해 1월 무인 시스템을 설치한 뒤 경비원을 32명에서 13명으로 줄였다. 월 2,500만원의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D아파트 입주자 대표 김씨도 “현재 매달 7,200만원의 인건비가 나가는데 통합시스템이 정착되면 비용이 2,500만원으로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보안업계에 따르면 무인 경비시스템 설계를 의뢰하는 아파트 단지가 늘면서 분쟁은 확산될 전망이다. 통합경비시스템 업체인 GSP시스템 관계자는 “6년 전에 비해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는 비율이 70~80% 가까이 늘었다”며 “문의 10건 가운데 4건 정도 설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는 섣불리 나설 입장이 아니라며 손을 놓고 있다. D아파트 단지가 위치한 강서구청 관계자는 “주민들이 찬반을 나눠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한쪽 편을 들면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고 아파트 내부 문제는 구청이 조정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남신 비정규직센터 소장은 “아파트 경비 노조가 없어 대부분 소리 소문 없이 무인화가 강행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교수는 “과거엔 경비원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취약해 별다른 저항 없이 무인화가 이뤄졌다”며 “비정규직 문제가 많이 언급되고 인식이 높아지면 D아파트 사례처럼 주민들이 경비원과 함께 적극 대응해 이슈화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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