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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으로 찢긴 시리아에도 '삶'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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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으로 찢긴 시리아에도 '삶'은 흐른다

입력
2016.02.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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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는 서방언론에서 공포와 파괴의 현장으로 묘사된다. 주민들은 살육 당하고 굶어 죽고 공포에 질려 도망친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내전을 연장하며 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 가고 있다. 다만 내전의 상흔에도 시리아에는 여전히 고향 마을을 지키며 하루를 살아내는 주민들이 있다. 그들은 상처투성이의 삶이지만 전쟁의 포성이 잠시 그친 사이 밭을 일구고 음식을 나눠먹고 서로 연대하며 내일을 기약한다. 시리아 이들리브 주에 위치한 마을 코린(Korin)을 통해 시리아 주민들의 삶과 일상을 그려봤다.

시리아 반군이 이들리브주의 한 마을에서 정부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시리아 반군이 이들리브주의 한 마을에서 정부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법이 사라진 마을 ‘코린’

코린은 이들리브 주에서도 북서부 변방에 속한다. 터키 남쪽 국경에서는 불과 40㎞ 떨어진 지역이다. 시리아를 양분하고 있는 정부군과 반군은 군사적 요충지인 코린을 차지하려고 지난 2년 동안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정부군이 마을을 차지하면 반군의 포격이 날아왔고 반군이 수복하면 러시아 전투기인 수호이가 날아와 폭탄을 퍼부었다. 어느 쪽이 이기든 코린은 전쟁터였다.

지난해 늦여름 코린에는 올리브와 체리 나무가 한창 꽃을 피웠다. 밭을 매던 주민들이 갑자기 다급하게 뛰어 무성한 올리브 나무 그늘 아래로 피했다. 정부군 헬리콥터가 마을 위를 배회하더니 독성을 띤 염소가스가 가득 찬 ‘통 폭탄’을 떨어뜨렸다. 폭탄이 투하되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주민들은 폭음이 그치자 익숙한 듯 돌과 시멘트, 타르를 칠한 방수포를 집고는 폭격에 무너진 집을 고쳤다. 마을 주민 중 약 3분의 1이 사망했다. 주민들은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생각보다 적게 죽었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도망치는 데 익숙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5년 간 내전은 고통과 공포의 강도를 낮춘 듯 했다.

내전은 모든 걸 무너뜨렸다. 마을 풍경이 변한 건 작은 일이었다. 시리아에선 ‘법’이 사라졌다. 시리아 유일정부라는 아사드 정권은 이름밖에 남은 게 없었다. 국가 기능은 수도 다마스쿠스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는 휘발유와 물, 여자를 뺏기 위한 도적떼가 활개쳤다. 살인이 일어나도 처벌할 방법이 없다. 살인자를 체포할 경찰도, 형량을 결정할 법원도 더 이상 마을에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코린도 마찬가지였다. 코린의 한 주민은 “서로 간에 불신과 증오가 점차 커졌다”며 “마을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주민들은 없었다”고 말했다.

하나의 소국으로 변하는 시리아 마을들

30대 청년인 아지즈 아지니는 수도인 다마스쿠스에 있는 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다 내전이 발발하자 최근 고향인 코린으로 돌아왔다. 현재는 코린을 이끌어가는 마을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아지니는 “법이 없는 현실에서 그나마 질서가 유지됐던 건 순전히 개인적인 인간관계와 마을주민의 연대의식 때문”이라며 “결국 주민들은 국가가 포기한 마을을 살리기 위해 자체적으로 새로운 법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코린은 마을에 있는 가문 단위 별로 대표를 뽑아 의회를 만들었다. 아사드 정부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의회였다. 대략 10명으로 구성된 의회는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하기로 했다. 의회가 빛을 발한 건 지난해 5월 한 청년이 마을 근처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을 때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마을 주민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법이 없으니 살인이 일어나면 복수극이 판쳤고 마을은 금방 피바다로 변했기 때문이다.

의회는 목격자 진술을 확보해 피해자의 사촌 2명으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그 후 의회는 살인을 저지른 피의자들로 하여금 피해자 가족에게 700만 시리안 파운드(약 4,204만원)를 지불하고 마을에서 1년 동안 추방하는 판결을 내렸다. 추방 결정은 고대 시리아 법에 있던 규정을 다시 살린 것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의회를 통해 법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계약에 동의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은 코린뿐만 아닌 다른 마을에서도 마찬가지다. 각지에 흩어진 마을들은 자신들의 종파와 정치이념, 성향 등의 처지에 맞게 코린처럼 자체적으로 법을 만들었다. 아지니는 “마을마다 주둔한 반군 세력이 다르고 종파도 조금씩 달라 각각 하나의 ‘독립국가’처럼 분화하고 있다”며 “시리아에서 마을과 마을 사이를 여행하는 것은 각기 다른 국가의 국경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마을에서는 정부인 아사드 정권도, 국가인 시리아도 이미 과거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고대국가와 같았다.

시리아 이들리브주의 작은 마을 코린에서 주민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슈피겔 홈페이지
시리아 이들리브주의 작은 마을 코린에서 주민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슈피겔 홈페이지

시리아 마을에도 존재하는 평범한 일상

시리아는 5년 간 이어진 내전으로 피폐해진 상태다. 지난해 수백만명이 유럽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다만 여전히 고향을 지기키 위해 가족들과 함께 남아 땅을 일구며 사는 주민들이 있다. 코린 주민들은 현재 마을 특산물인 올리브와 체리, 무화과를 재배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고산지대에 있거나 강을 끼고 있는 다른 마을들은 배나 멜론, 감자 등을 기르기도 한다. 마을들은 대부분 물물교환으로 부족한 식량을 채우고 일부 남는 건 중개상을 통해 걸프 국가나 수단 등에 판매하고 있다. 코린에서 생산되는 체리 씨앗은 여성들을 위한 약재로 쓰여 인기가 높아 1㎏ 당 8유로(약 1만512원)에 팔린다.

2013년 여름에는 코린의 마을 광장에 무선 인터넷망인 와이파이(Wifi)가 설치됐다. 알레포 주정부의 내무부에서 정보통신(IT) 전문가로 일하던 사람이 고향인 코린으로 돌아왔다. 그는 오자 마자 인근 국경 너머 터키 통신국에 인공위성으로 연결되는 인터넷 망을 마을에 설치했다. 물론 불법이었지만 주민들은 밤만 되면 마을 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인터넷 서핑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주민들이 인터넷을 이용하려면 광장 옆에 있는 가게에서 쿠폰을 구입하면 됐다. 적막한 밤 마을 밖 멀리에서 간간히 들리는 포성과 총성은 그들에게 익숙한 소음일 뿐이었다.

물론 인터넷이 개통되자 좋지 않은 점도 생겼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따르는 일부 마을 주민들이 광장에 나와 인터넷을 “죄악의 통로”라고 비난하며 위협하기도 했고, 이슬람 테러조직인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한 남편이 페이스북을 통해 “자살폭탄 공격에 자원했다”며 코린에 살고 있는 아내에게 IS 참여를 권유하기도 했다. 지난해 코린에서는 청년 10여명이 IS에 가담하려고 마을을 떠났다. 아지니는 “청년 중 한 명은 골초였다”며 “IS는 이슬람법으로 흡연을 엄격히 금하는데 그가 거기서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농담을 하며 안타까운 듯 고개를 저었다.

시리아-터키 국경 부근인 이들리브 주 투르마니아에서 시민들이 러시아의 공습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시리아-터키 국경 부근인 이들리브 주 투르마니아에서 시민들이 러시아의 공습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내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주민들

올 겨울 마을에 필수적인 기름값이 크게 올랐다. 지난해만 해도 시리아 정부에서 유통하는 최고급 디젤유는 리터 당 110 시리안 파운드였고, 그보다 질이 낮은 IS가 공급하는 디젤은 리터 당 90 시리안 파운드 정도였다. 하지만 정부군과 반군의 싸움이 격화되자 올해 시장에서는 IS가 공급하는 디젤 밖에 찾아볼 수 없다. 그마저도 리터 당 125 시리안 파운드로 껑충 뛰었다. 난방연료로 쓸 디젤을 구하지 못해 주민들은 이번 겨울 추위에 떨며 지내고 있다. IS의 디젤마저 조만간 공급이 끊긴다는 얘기가 나돌면서 이제는 소규모 조직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암거래로 유통시키는 디젤마저 값이 치솟고 있는 실정이다.

마을에서는 납치 사건도 빈발하고 있다. 시리아 반군이 군자금을 마련하려고 마을 주민을 납치한 후 몸값을 요구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린에서는 반군 소속 군인 2명이 근처 마을인 아리하에서 사업가를 납치해 와 마을에 감금한 일도 있었다. 코린의 마을지도자들이 중재한 탓에 그는 간신히 석방됐다. 하지만 사업가가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인 누스라 전선 소속인 탓에 누스라 전투원들이 납치범을 잡기 위해 마을로 들이닥쳐 주민들이 공포에 휩싸이기도 했다. 한 주민은 “반군과 IS, 무장단체 사이에서 납치와 몸값 요구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하나의 사업으로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내전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코린에선 주민 약 30명이 살 길을 찾아 독일로 떠났다. 어떤 이들은 유럽으로 가기 위해 수 주 동안 걸어야 하는 고달픔과 지중해를 건널 때 느끼던 죽음의 공포를 편지에 적어 마을로 보내오기도 했다. 코린에서 교사로 일하던 압둘하카임은 지난해 전 재산을 털어 유럽으로 떠났다가 1년여 만인 이달 초 마을로 돌아왔다. 압둘하카임은 “독일의 베를린은 물론 여기보다 훨씬 안전했다”며 “하지만 나는 베를린에서도 폭탄이 쏟아지던 시리아와 같이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고 우울해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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