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이 위치한 곳은? 당연히 전주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 주소지는 전북 완주군 봉동읍이다. ‘전주 우석대’도 완주군 삼례읍에 있다. 전주의 지명도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완주의 오래된 절과 성당을 찾아갔다.
▦잘 늙은 절 한 채, 화암사
겨울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그가 여행을 떠난 날도 비가 왔었나 보다. 안도현 시인은 화암사를 가리켜“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잘 늙은 절 한 채”라 했다. 그리곤 “화암사, 내 사랑/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라며 마무리한다. 이보다 더 강력한 추천사가 있을까?
화암사 가는 길은 경천면 가천리 마을이 끝나는 지점부터 숲이다. 주차장까지 연결된 도로는 시멘트로 포장했지만 호젓한 산길이나 마찬가지다. 이파리 하나 없는 계절인데도 숲의 아늑함이 느껴진다. 한여름 녹음이 어느 정도일지, 늦가을 단풍은 얼마나 화려할지 짐작할 만하다. 주차장부터는 본격적인 오솔길이다. 폭이 좁아진 만큼 나무는 더욱 빼곡해졌다. 처음 10여분은 폭신폭신한 흙 길과 완만하게 경사진 돌길이다. 나머지 10여분은 다소 가파른 철 계단과 돌계단으로 이어진다. 1km 남짓한 거리, 이마에 땀이 맺힐만하면 드디어 화암사에 닿는다.
가파른 돌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좁은 계곡을 가로지른 불명교를 건너면 바로 절간 건물이다. 사찰의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는 일주문도, 불사를 수호하는 사천왕문도 없다. 우화루(雨花樓)가 산문 역할을 대신한다. 차가운 겨울비가 꽃비처럼 무채색 처마아래로 흩뿌려진다. 건물을 떠받친 5개의 오래된 기둥은 휜 듯하면서도 안정감이 느껴진다. ‘잘 늙었다’라는 표현에 무릎을 칠 수 밖에 없다.
우화루 옆 계단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정사각형 아담한 절 마당이다. 우화루에서 정면으로는 극락전, 좌우엔 적묵당과 불명당이다. 더하고 뺄 것도 없다. 보이는 게 전부다. 극락전과 우화루의 희미한 단청자국을 빼면 화장기라곤 전혀 없고, 그 흔한 석등과 석탑 등 거추장스런 치장도 보이지 않는다. 기왓장 시주로 대표되는 ‘불사중창’의 호들갑도 없다.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신라시대 원효와 의상대사가 머물렀다는 기록으로 보아 화암사가 오래된 사찰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세간에 조금이나마 알려진 건 극락전이 국보로 지정된 2011년 이후부터다. 처마를 더 길게 빼내는 하앙식(下昻式) 공법을 적용한 국내 유일의 건물임이 밝혀진 까닭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만 활용한 줄 알았던 건축기법이 극락전에 적용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적묵당 마루에 걸터앉았다. 우화루 뒤편 불명산은 여전히 구름 속이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낙수 소리만 경내에 가득하다. 고요하고 적막하다. 그래서 ‘절간처럼 조용하다.’ 사찰의 본래 모습을 발견한 듯 뿌듯하다. 우화루 옆 계단으로 되돌아 나오자 너른 바위 위에 둘러진 돌담너머로 낮은 지붕이 보일 듯 말듯하다. 아득한 과거인양 자꾸만 되돌아본다.
▦한국 최초의 한옥 성당, 되재성당
화암사에서 멀지 않은 화산면 승치리엔 한국 최초의 한옥성당인 되재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종루의 십자가나 바로 옆 예수상이 아니라면 잘 지은 한옥으로만 보인다. 1895년 건립했으니 서울 약현성당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 성당이기도 하다. 현재 건물은 당시 모습은 아니고 한국전쟁 때 소실된 후 1954년에 재건한 것이다. 도시화 현상으로 교인이 줄면서 본당도 인근 고산성당으로 옮겨갔고, 지금은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공소(公所)로 남아있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만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열리는데, 제단 맞은 편 출입구는 항상 열려 있어 천주교 신도가 아니라도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있다. 스테인드글라스 대신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엷은 조명이 은은하다. 내부는 나무판자 가림막으로 한 가운데를 나눴다. 출입구에서 봤을 때 오른편에 남성, 왼편은 여성 자리다. 당시의 천주교도 남녀칠세부동석의 강고한 벽을 넘지 못한 흔적이다.
▦함께 볼 만한 곳
●전라선 삼례역 인근엔 옛 미곡창고를 개조한 삼례문화예술촌이 있다. 양곡수탈에 앞장 섰던 일본인 지주가 1926년 세운 미곡창고 6개 동을 각각 디자인박물관, 책 박물관과 책 공방, 목공소와 미술관, 카페로 개조했다. 외관은 전혀 손대지 않아 허름한 창고 모습 그대로여서 안과 밖이 완전히 이질적이다. 내부 인테리어는 곡식이 썩지 않게 벽면에 덧댄 목재와 환기 시설을 그대로 활용해 젊은 건축학도들도 심심찮게 찾는다.
●삼례문화예술촌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의 ‘비비정마을’도 함께 둘러볼 만 하다. 비비정(飛飛亭)은 서해로 이어지는 물길이었던 만경강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자리잡은 정자다. 자그만 언덕이지만 삼례에선 그나마 높은 곳이다. 남서 방향으로는 넓은 평야 끝으로 지평선이 펼쳐져 조망이 시원하고, 특히 낙조가 아름답다. 언덕 꼭대기에는 마을기업이 운영하는 카페 ‘비비낙안’이 , 아래쪽에는 농가맛집 ‘비비정(063-291-8609)’이 자리잡았다. 메뉴는 불고기주물럭 버섯전골 홍어탕 3가지로 단출하지만 주민들의 손맛이 밴 11가지 기본반찬으로 상은 푸짐하다.
●수도권에서 내려간다면 삼례문화예술촌과 비비정마을은 호남고속도로 삼례IC에서 가깝고, 되재성당과 화암사는 논산IC를 통하면 편리하다.
완주=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