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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터울 제자 법정 묻고 성철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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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터울 제자 법정 묻고 성철 답하다

입력
2016.02.1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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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정말 사람이……. 사람이 성불할 수 있습니까?” (법정 스님)

“성불이란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본디 부처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계신 곳은 바로 지금 그대가 서 있는 그 자리입니다.” (성철 스님)

한국 불교사의 두 거목 성철(1912~1993) 스님과 법정(1932~2010) 스님이 생전에 나눈 대화들을 엮은 책 ‘설전(雪戰)’(책읽는 섬 발행)이 출간됐다. 두 사람 인연의 흔적을 갈무리하고, 중요 대목마다 성철 스님을 가까이서 보필한 원택 스님의 기억을 내레이션으로 녹였다. 말다툼이 아닌 눈싸움을 제목으로 택한 까닭은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눈과 같은 두 수행자의 치열한 문답이 오히려 상대를 다치게 하기보다 웃게 만들었다는 뜻에서다.

속세의 나이로도, 승려로서의 나이로도 꼬박 20년 터울인 두 스님의 문답의 첫 기록은 1967년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백일(百日)법문’에서 시작된다. 중도와 깨달음을 웅변하며 토해낸 사자후(獅子吼)로 전국 선승과 대중을 일갈한 이 법문 일부 대목에서 35세의 젊은 법정 스님은 사회자 겸 질문자로 기초적, 원론적 질문들을 쏟아냈다. 성철 스님 역시 영민한 제자의 은근한 도발을 즐기듯 이런 의문에 조목조목 답하며 불교철학의 진수를 풀어낸다.

깨달음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내비친 “정말 성불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해 성철 스님은 “중생에게 부처님과 같은 능력이 없다면 아무리 공부를 해도 헛일일 테지만, 부처님께서는 인간에게 그런 무진장한 대광맥, 금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진장의 대광맥이 사람 사람 가슴속에 다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다”며 “이것을 개발하고 소개한 것이 불교의 근본 생명선”이라고 답했다.

1968년에는 법정 스님이 필화에 휘말리기도 했다. 성철 스님이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3,000배를 하도록 한 규칙을 정면 비판하는 글을 대한불교(현 불교신문)에 기고한 것이다. 한 여름 대학생들이 성철 스님을 만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법당에서 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은 절이 아니라 몸을 굽혔다 폈다 하는 굴신운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은 것이다. 성철 스님은 별 반응이 없었지만, 다른 젊은 스님들이 발끈해 성철 스님의 물건들을 치워버린 탓에 성철 스님은 서울로 수행처를 옮긴 일은 유명한 일화다.

책에는 두 사람이 이 사건으로부터 꼭 14년 뒤인 1982년 새해 한 언론사의 주선으로 마주앉은 자리에서 나눈 대화도 담겼다. 3,000배의 연유를 묻는 법정 스님의 질문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여기 찾아올 때는 나를 찾아 오지 말고 부처님을 찾아오시오. 나를 찾아와서는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데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한 말씀만 해달라는 이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말 잘 들어, 중한테 속지 말어. 나, 중이야. 나한테 속지 말어. 도를 아는 사람이니 뭐니 그런 뜬소문에 속지 말란 말이야.’ 그 말 한마디밖에 나는 할 말이 없어요”

그 밖에도 법문 과정에서, 대담에서, 성철 스님의 원고를 법정 스님이 윤문하는 과정에서 등 다른 시간, 상황, 장소에서 이뤄진 현문과 현답들은 생명존중, 중도, 깨달음 등 가르침의 주요 화두들을 망라한다. 성철 스님은 특히 참선 수행자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수칙으로 ▦잠 많이 자지 말라 ▦말 많이 하지 말라 ▦과식ㆍ간식하지 말라 ▦책보지 말라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 것을 꼽았다.

1973년 경남 합천 해인사 백련암 뜰에서 송광사 주지를 지낸 현호(왼쪽부터) 스님, 성철 스님, 법정 스님이 함께 햇살을 받고 서 있다. ⓒ유동영
1973년 경남 합천 해인사 백련암 뜰에서 송광사 주지를 지낸 현호(왼쪽부터) 스님, 성철 스님, 법정 스님이 함께 햇살을 받고 서 있다. ⓒ유동영

대담 말미에 “새해를 맞아 대중들에게 한 말씀”을 청한 법정 스님의 말에 성철 스님이 전한 당부는 당대뿐만 아니라 2016년 이 땅을 범람하는 숱한 집착, 과오, 이기심을 겨눈다.

“거듭 말하지만, 내가 볼 때는 전생도 없고 내생도 없고 항상 금생뿐입니다. 우리는 광명 속에서 살 뿐만 아니라 우리 자체 이대로가 광명입니다. 그러니 ‘어둡다, 어둡다’하지 말고 마음의 눈을 밝게 뜨자,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마음 거울에 낀 때는 욕심 때문에 묻어 있는 것이니까, 욕심을 버리자 이것입니다. 자꾸 남을 돕는 생활을 합니다. 그러면 차차로 업이 녹아서 없어집니다. 그러면 온 천지광명을 비출 수 있는 것입니다. 천하부귀를 다 누린다고 해도 내가 본시 나쁜 것, 흙덩이가 아닌 진금인 줄 아는 이 소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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