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을 사칭해 동창생들의 눈물 젖은 돈을 가로챈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승승장구하는 은행원 행세를 하며 9개월 동안 초중고 동창생 및 지인 25명에게 투자금 명목으로 총 5억2,000만원을 가로챈 혐의(사기 및 유사수신행위 등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로 정모(24ㆍ무직)씨를 구속했다고 1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전과 9범으로 동일 수법의 범죄를 저질러 온 정씨는 재판을 받던 도중 소송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5월 다시 범행에 나섰다. 고졸 학력이 전부인 그는 “내가 은행에서 근무하는데 비공식 업무로 투자업도 하고 있다. 대출을 받아 투자하면 대출금 이자를 내주고 두 달 안에 원금의 150%를 수익금으로 주겠다. 그 돈으로 대출금을 갚고 등록금을 낼 수 있다”며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 동창생들을 꼬드겼다.
당장 거금을 손에 쥘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한 피해자들은 이자가 높은 제3금융권 대출도 서슴지 않았다. 중학교 친구 이모(24)씨는 종잣돈 2,000만원을 대출해 정씨에게 건넸지만, 수익금 명목으로 900만원을 돌려받은 것이 전부였다. 정씨는 이씨와의 거래 내역을 다른 동창생들에게 보여주면서 더 많은 피해자들을 모집했다. 피해자들은 여러 업체에서 대출해 1인당 최대 7,000만원까지 정씨에게 건넸다.
정씨의 범행은 피해자 동창생 중 한 명이 지난해 12월 경찰에 정씨를 고소하면서 발각됐다. 하지만 정씨는 이미 친구들에게 뜯어낸 투자금을 유흥비로 전부 탕진한 후였다.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정씨는 람보르기니, BMW 등 고급 차량을 빌려 탔고, 여자친구와 월세 200만원짜리 강남 오피스텔에서 동거하는 등 호화 생활을 누렸다. 정씨는 애초 마련하고자 했던 소송 비용도 남김 없이 써버려 빈털터리로 전락했다. 이에 따라 동창생들은 피해 금액을 보전 받을 길도 요원한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채권 추심이 이뤄지면 피해자들도 신용 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면서 “높은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를 권유하거나 자본금 없이 이자가 비싼 제3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투자할 것을 제안하면 범죄 수법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