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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사라지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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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사라지지 말고

입력
2016.02.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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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를 들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동물 문제와 관련해서 언론에서 의견을 물을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질문이 이해가 잘 안 됐다. 작년에 일어났던 ‘캣맘’ 사망 사건 이후 아사한 길고양이가 있냐는 질문에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 사건 이후로 캣맘들이 겁을 먹어서 밥 주는 걸 중단해서 굶어 죽은 고양이가 있느냐는 질문인 건가요?”

사건이 일어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 후속 취재를 하는 거였고 사람이 죽은 사건이니 어떤 식이든 파장이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그런 일은 없다.

단지 아파트 화단에서 밥을 주는 캣맘이 밥을 줄 때 자꾸 위를 쳐다보게 된다고 해서 그게 마음 아팠을 뿐. 길고양이를 돌보는 일이란 게 각자의 일상과 연결되어 끈질기게 이어지는 일임을 기자에게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았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일을 한두 마디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김보경 제공
길고양이를 돌보는 일을 한두 마디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김보경 제공

길 위의 생명을 보살피는 일은 한두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밥을 주는 사람의 상황이나 마음가짐, 동네 상황, 길 위 아이들의 성격이 다르니 밥을 주는 방법도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도 다 다르다.

그러다 보니 각자의 방법으로 길고양이를 챙기는 일에 다른 사람이 개입하기도 힘들다. 관련 모임이 있지만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격려하면서 전투력을 재확인하는 정도일 뿐이다.

아마도 길 위의 생명을 돌보는 일이 캣맘과 길고양이라는 집단끼리의 만남이 아니고 각 개체가 만나는 사적인 관계여서 그럴 것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일. 그런 까닭에 조직력이 뛰어난 어떤 단체가 어느 날 ‘오늘부터 길고양이에게 밥 주지 마’라고 발표를 한들 캣맘들은 ‘흥’ 콧방귀 한 번 뀌고는 주섬주섬 밥을 챙겨서 각자의 ‘우리 아이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

사진작가인 녹스는 미국 뉴욕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 주변의 길고양이들을 챙긴다. 자동차 밑에 숨은 생명체에 별 관심이 없는 회색 도시에서 길 위에서 스스로 삶을 부양하는 생명체들과 인연을 맺는다.

사진작가 녹스가 최근 찍은 길고양이 사진을 보내줬다. /녹스(Knox) 제공
사진작가 녹스가 최근 찍은 길고양이 사진을 보내줬다. /녹스(Knox) 제공

꾸준히 밥을 주면서 아프고 다친 아이는 치료하고, 때로는 입양도 보내고, 중성화 수술을 해서 개체 수를 조절하면서 부지런히 돌보지만 여전히 전염병, 로드킬, 인간의 편견과 잔혹함, 코요테나 너구리의 공격 등으로 아이들을 잃는다.

힘들게 죽어가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고통, 이웃과의 갈등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밥을 챙기는 녹스의 행동을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다만 길 위의 삶은 지속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만이 녹스처럼 오늘도 묵묵히 밥을 챙기러 나갈 뿐이다.

그래서일까. 녹스의 사진집 속 길고양이는 길 위의 고단함이 아닌 우리 곁에서 숨 쉬며 살고 있는 뜨거운 생명으로 다가온다.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사라지지 말고.’

동네 길고양이들 밥을 챙길 때마다 아이들 뒤통수에 대고 내가 매일 하는 주문이자 부탁이다. 겨울이면 추위를 못 견디고 떠나는 아이들이 많은데 다행히 올해는 한 녀석도 떠나지 않았다. 지난 캣맘 모임에서는 춥다 보니 옷을 잔뜩 껴입은 채 밥과 물을 잔뜩 담은 가방을 들고 어둠 속으로 숨어드느라 수상한 사람으로 신고를 당해서 경찰과 맞닥뜨린 캣맘 얘기에 깔깔 웃었다.

캣맘들은 벌써 봄을 기다린다. 겨울 외투를 벗고 가벼운 차림으로 밥을 챙기는 캣맘, 그리고 길고양이의 길 위의 삶은 지속된다.

책공장 더불어 김보경 대표

참고한 책: 도시를 누비는 작은 사냥꾼 방랑 고양이, 녹스,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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