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황금빛 모서리’라는 시집을 낸 시인 김중식은 이렇게 쓴 적 있다. “산만큼 쓰고, 쓴 만큼 산다” 그 말의 하중이 버거웠을까. 시인은 시집 출간 이후 여태 절필 상태다. 사는 것도 쓰는 것도 변변찮은 주제에 말만 많아진 탓인지 요즘 자주 곱씹는다. 진중한 고려나 성찰 없이 감정부터 드러내게 되는 상황에 자주 휩쓸려서 일 거다. 말은 육체적 호흡 체계와 밀접하다. 말을 삼키는 건 숨을 삼켜 자신의 마음자리를 살피는 것이고, 말을 뱉는 건 듣는 이의 숨을 지긋하게 가라앉혀 이편의 진심을 가지런히 들여다보게 하는 일이다. 그렇게 전달되는 말은 격식만 갖춘 예의나 사탕발림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자연스러운 호흡이 깊이를 얻을 때 행동도 정연하고 투명해진다. 그런 식으로 말과 감정을 숙련한 사람의 태도는 존경스러운 데가 있다. 감언이설로 현혹하려 하거나 책임지지 못할 말에 혼자 도취돼 감정에만 파묻힌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천박과 비열을 드러내게 마련. 삶이 그렇게 누추해진다. 글도 마찬가지. 살아온 삶과 살아갈 삶은 시간의 흐름 안에서 갖은 부침을 겪지만, 그 흔들림조차도 깊은숨으로 끌어당겨 현재를 헤아릴 때 말이 생명력을 얻고 삶 전체에 대한 통찰이 생긴다. 지식이나 이론은 나중 문제다. 호흡이 거치니 삶도 글도 거칠어진다. 한동안 숨쉬기부터 점검하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선 침묵이 약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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