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 내성 환자에 새약 처방하자
“다른 약도 있는데 기준 어겼다”
보건당국, 병원에 삭감 통보
반년치 약값만 3000만원 소요
난치성 환자들 복용 중단 땐
변종 균으로 전파 가능성도
“너무 비싼 약값도 문제” 제기 속
“적극적 치료 대책 필요” 목소리
대구에 사는 80대 여성 A씨는 2012년 ‘다제내성’ 결핵 진단을 받았다. 기본 치료제로 지정돼 있는 약에 내성이 생겨 치료가 어려운 결핵 환자라는 의미다. 내성이 생기지 않은 약들을 추가로 써봤지만 부작용이 심해 제대로 복용조차 못했다. 그대로 두면 결핵을 전염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주치의는 최근 출시된 결핵 신약을 지난해 7월 처방했다. 다행히 부작용 없이 효과가 나타나 A씨는 꾸준히 복용했다.
그런데 2개월 뒤 A씨는 신약 복용을 중단해야 했다. 건강보험 지원이 끊겨 한 알에 15만8,000원에 달하는 약값을 A씨가 부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5일 의약계에 따르면 다국적제약사 얀센이 40여년 만에 개발한 결핵 신약 ‘서튜러’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 삭감이 잇따르고 있다. 보험 적용이 시작된 지난해 5월 이후 서튜러는 약 100건 처방됐는데, 이 중 8건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삭감을 통보한 것이다.
약을 처방할 때는 허가 기준과 가이드라인이 있어 질병이 위중한 정도에 따라 단계별로 쓸 수 있는 약이 정해져 있는데 이를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서튜러는 1~5군으로 분류된 결핵 치료제 가운데 광범위한 약제의 내성을 가진 난치성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쓸 수 있는 5군에 해당되는 약이다. 보건당국은 내성이 나타나지 않은 다른 약들도 있는데 굳이 서튜러를 쓸 이유가 없었다며 건보 지원을 삭감했다. 그러나 A씨의 주치의는 “다른 약들을 쓰기에 환자 상태가 적합하지 않아 서튜러를 처방할 필요가 있었다”고 반박했다.
이런 논란이 이어지면서 의약계는 경제적인 이유로 복용을 중단한 A씨가 신약에 대한 내성을 전파시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보험이 삭감되면 병원은 비싼 약을 다시 처방하길 꺼리고, 결국 환자가 약값을 부담해야 하는데, 보험 적용 땐 통상 0~5%만 내던 약값이 삭감 이후엔 천정부지로 뛰게 된다. 서튜러는 6개월치 약값만 3,000만원에 달한다.
문제는 완치되기 전에 신약을 끊으면 환자 몸에 남은 결핵균이 신약에 대항할 수 있는 변종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나중에 다시 같은 신약을 써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환자의 기침 등을 통해 변종 균에 감염된 주변 사람들 역시 신약 약효가 떨어질 수 있다. 이런 사례가 늘수록 내성이 확산돼 결국 신약이 무력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결핵 전문의들은 지적했다.
또 이 같은 삭감 조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결핵 발생률 1위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보건당국의 결핵 퇴치 정책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한 결핵 전문병원 의사는 “결핵이 정부가 나서서 퇴치 정책을 펴고 있는 법정 감염병임을 감안할 때 신약 삭감 비율 8%는 높은 수치”라며 “고도 내성 환자가 극소수이긴 하지만, 이들이 복용하는 신약에 내성이 생긴다면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약이 너무 비싼 게 근본 문제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한국얀센은 “연구개발 비용 등을 고려해 산정된 가격”이라며 “서튜러를 쓴 환자가 완치됐을 때 다른 약을 쓴 환자에 비해 1인당 8,018만원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절감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결핵 치료를 저해할 수 있는 보험 기준, 심사ㆍ삭감 등을 최소화해 의료기관에서 최선의 치료에 전념하도록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의약계는 “신약이 필요한 고도 내성 환자에 대해 더 적극적인 치료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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