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일각에서 북한 핵 위협에 맞서 우리도 독자적인 핵 무기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핵무장론이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북한 핵무기에 대한 논리적 억제수단을 확보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정책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제로(0)인 무책임한 발상이자 안보 포퓰리즘”이라고 입을 모았다. 당장 북핵 실험을 강력 규탄하며 국제 제재를 촉구해온 우리나라가 핵 무기를 갖겠다는 자체가 자기모순이란 지적이다.
국제사회 고립 자처하며 평양 길을 따르자(?)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맹점은 핵 개발의 당위만 있을 뿐, 핵무장 선택시 치러야 할 비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우리가 핵을 개발해야 한다면, 당장 핵확산금지조약(NPT) 당사국들의 전체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한 만큼 결국 NPT 를 탈퇴하고 핵 개발에 나서야 한다. NPT 탈퇴는 핵 확산을 금지한 국제사회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외교적 고립은 물론 강력한 경제 제재 등을 감수해야 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핵무기는 가질 수 있을지 모르나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 경제는 망가진다”며 “경제를 파탄 내며 제2의 북한으로 가는 길을 과연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미국과 등질 수 있나… 한미동맹 균열만 우려
미국이 우리의 핵 무기 개발을 허용할 리 없다는 점도 핵무장론이 얼마나 허황된 주장인지 보여준다. 지난해 개정된 한미원자력협정은 여전히 우리 자체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 연료 재처리 과정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가 보유한 핵원전을 비롯한 핵기술 대부분이 미 정부의 승인으로 도입돼 사용되고 있다. 결국 핵 무기를 만들기 위해선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핵 비확산인 미국과도 등을 지는 수밖에 없다. 미국은 2004년 우리가 극소량의 우라늄 농축에 나섰을 때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까지 단행하며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은 물론 중국도 핵 도미노에 따른 일본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 한반도 비핵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한반도에 핵이 있어서 안 된다며 배치된 전술핵도 1992년 거둬들였다”며 “섣불리 미국을 설득하려다 한미동맹의 균열만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NPT 체제 바깥에서 핵 보유에 나섰지만 이는 미국의 국익에 따른 전략적 묵인에 의해 이뤄진 경우라 우리와 대비된다.
명분 없는 소모적 논란, 비핵화 해법 동력 상실
문제는 여론을 등에 업은 핵무장론이 북핵의 근본적 해결책을 찾는 생산적 논의를 가로막는 점이다. 당장 핵 무장을 주장하고 나서면 북핵 개발 중단을 요구하거나 국제사회 제재를 촉구하는 명분이 설 자리를 잃는다. 일본 등의 핵무장 여론을 부추겨 동북아에 핵 도미노를 촉발시켰다는 원죄를 뒤집어 쓰는 부담도 크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은 “지금은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백약을 다 써야 하는 시기인데 핵무장론은 이 모든 논의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우려가 크다”며 “지금은 희망이나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차분하게 비핵화 해법을 고민할 때다”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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