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강동원(35)이 1,000만 클럽에 가입할 날이 멀지 않았다. 15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영화 ‘검사외전’(3일 개봉)은 개봉 12일만인 지난 14일 누적 관객수 804만5,010명을 동원했다. 앞으로 200만명이 더 이 영화를 찾으면 강동원에게도 ‘천만배우’라는 타이틀이 붙게 된다. 평일 20만명 정도가, 휴일에는 50만명이 찾는 현재의 흥행 추세를 이어가면 이번 주말이면 ‘검사외전’의 1,000만 돌파가 가능하다.
영화계에서는 ‘검사외전’의 작품성보다는 ‘강동원 효과’가 흥행에 큰 영향을 줬다고 분석한다. ‘검사외전’은 지난해 관객 동원에 성공한 영화 ‘베테랑’이나 ‘내부자들’처럼 권력자들의 비리를 다루고 있으나 두 작품에 비하면 완성도가 많이 떨어진다. ‘검사외전’ 속 꽃미남 전과 9범 사기꾼 치원을 통해 발산한 강동원의 재기 발랄한 연기가 흥행몰이의 큰 이유라는 데 이견을 내세울 영화인은 거의 없다.
강동원의 티켓 파워는 지난해 11월 개봉한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도 발휘됐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구마의식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도 500만명이 넘는 관객이 찾았다. 신인 감독(장재현)의 첫 장편 영화인데다 40여년 전 만들어진 영화 ‘엑소시스트’(1973)를 뛰어넘을 만한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말끔한 사제복을 입은 강동원의 모습은 여성 팬들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했다. 온라인에서 강동원의 사제복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글들이 넘쳐날 정도였다.
강동원은 충무로에서 유별난 배우다. 송강호 김윤석 황정민 등 외모보다 연기를 내세운 부류에 당연히 묶이지 않으면서도 장동건 조인성 이병헌 등 ‘외모파’에도 섞이지 않는다. 미남배우면 흔히 따라다니는 연기력 논란에서도 기이하게도 비켜서있다. 놀라운 연기를 선보이지 않으면서도 외모로만 평가 받지도 않는 모순적 영역에 그는 놓여있다.
물론 강동원은 수려한 외모로 첫 시선을 끈 배우다. 모델 출신답게 186cm의 훤칠한 키에 점잖은 수트나 자유 발랄한 캐주얼 등 여러 의상을 가리지 않고 소화한다. 강동원은 매일 새 옷을 갈아 입는 모델처럼 배우 데뷔 이래 똑같은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거의 없다. 그가 주연한 영화 13편을 돌아보자. 영화 데뷔작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에서는 가석방 된 여자(김하늘)가 약혼녀인 척해도 꼼짝 못하는 동네 약사 최희철을 연기하며 순진무구함을 선보였고, ‘늑대의 유혹’(2004)에서는 고등학교 ‘짱’으로 등장해 여심을 흔들었다. 가족을 위해 의도치 않게 살인까지 했던 사형수가 됐다가(‘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500년 전 조선시대의 익살꾼 전우치로 변신(‘전우치’)하기도 했다. 전 국정원 요원과 우정을 나누며 북에 두고 온 가족 때문에 고뇌하는 남파공작원(‘의형제’)으로 스크린을 수놓기도 했다. 자유자재로 초능력을 쓰는가 하면(‘초능력자’),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며 백성을 괴롭히는 비정한 양반 조윤(‘군도: 민란의 시대’)이 되기도 했고, 선천성 조로증인 아들을 둔 철 없는 아빠(‘두근두근 내 인생’)로도 활약했다.
화려한 연기 이력을 지닌 그도 데뷔 초기엔 여느 신인 배우와 다르지 않았다. 잘 생긴 신인 배우들이 의당 거치는 배역을 통해 대중과 첫 만남을 가졌다. TV드라마를 통해 배우의 길에 첫 발을 내디딘 그는 2003년 MBC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와 ‘1%의 어떤 것’에서 의사와 재벌 2세로 각각 출연했다.
하지만 강동원의 ‘잘 생김 연기’는 배우 이력 초반에 막을 내렸다. 일부러 그런 듯 잘 생긴 실장님이나 전문직, 고위관직 등의 배역으로 화면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매력을 어떻게 하면 잘 발산할 수 있을지에 신경을 쓴 듯했다.
‘검은 사제들’의 사제복으로 묘한 판타지를 자극하는 모습이라든가, ‘전우치’의 장난기 있는 천진난만한 눈웃음, ‘군도’에서 칼을 휘두르다 긴 머리를 풀어 고운 여성미(?)까지 내보였다. ‘검사외전’에선 죄수복을 명품 스타일 패션으로, 검객으로 변한 ‘형사 Duelist’는 부드러운 카리스마 등이 마법처럼 펼쳐지며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강동원은 연기를 굉장히 잘 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자신의 연기가 관객에게 어떻게 어필하는지 아는, 상당히 똑똑한 배우”라고 말했다.
신인 시절을 지나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는 시기가 됐을 때 안주에 대한 유혹을 거부하고 폭넓은 역할들을 택했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한쪽으로 쏠리는 캐릭터를 찾지 않은 게 연기 논란을 피해간 ‘신의 한 수’였다. 멋지고 좋은 역할만 찾지 않은 게 강동원의 성공 비결이다. 여전히 남아있는 경상도 말투라는 핸디캡도 이러한 연기 이력으로 넘어설 수 있었다. 정덕현씨는 “‘검은 사제들’과 ‘검사외전’은 둘 다 어둡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지만 강동원으로 인해 영화가 꽉 차 있는 느낌을 받는다”며 “두 영화는 강동원에게 반항적이면서도 냉소적인 면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정씨는 “어쩌면 지금 젊은 세대의 마인드를 대변하는 것도 같아 공감대를 형성한다”고도 설명했다.
이름난 대가들과 굳이 호흡을 맞추지 않는 것도 강동원 연기 세계의 특징이다. 최근 한국일보와 만난 강동원은 신인 감독들과의 연이은 조우에 대해 “의도적인 건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 강동원 스타일로 보는 시선이 있다. 그래서일까. 충무로의 신인 감독 시나리오 10개 중 10개가 강동원에게 갈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한 영화관계자는 “‘초능력자’ ‘검사외전’ 등 신인 감독들과 호흡을 맞추는 건 스타 감독에 묻어가지 않으려는 자존감을 보이는 동시에 10년 노하우로 쌓인 자신의 선구안에 자신감이 있다는 표시”라고 평가했다.
강동원도 10년 넘게 연기 경력을 쌓으면서 자신의 변화를 인정한다. 그는 “언론이나 영화관계자들이 이제는 저를 진짜 프로로 인정해주시는 느낌이 있다”며 “예전에는 냉소적인 생각도 있었으나 지금은 인정해주시는 만큼 더 편하고 뭐든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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