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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 얘기 꺼내자 직원 27명 아무 말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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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 얘기 꺼내자 직원 27명 아무 말도 못해”

입력
2016.02.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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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입주기업 일성레포츠 이은행 사장

“그동안 믿고 따른 직원들에게 모두 사직서를 받아야 할 처지입니다. 난감하네요.”

개성공단기업협회 긴급 이사회가 열린 1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만난 이은행(62ㆍ사진) 일성레포츠 사장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개성공단에서 아웃도어의류나 스포츠의류 등을 생산해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대형 브랜드업체에 납품해오던 그는 북한의 자산동결조치가 내려져 사실상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졸지에 직원 27명도 모두 내보내야 할 상황이다. 그는 12일 오전 직원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내일(13일)까지만 근무해달라”고 하자 직원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사실상 재취업이 어려워 생계가 막막해진 상황을 실감했던 것이다. 그는 “정부의 일방적 조치로 나를 포함해 직원 모두가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됐다”며 “한 집안의 가장인 이들의 생계를 위해 정부가 실업급여나 재취업 등 무엇이든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로 28년째 봉제사업 한 우물만 파온 이 사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 서울 중랑구에서 공장을 운영하다 갈수록 상승하는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모든 생산시설을 개성공단으로 옮겼다. 약 40억원을 투자해 2007년 개성공단에 5만2,800㎡ 규모의 2층짜리 공장을 지었고, 봉제 라인 18개를 만들어 임금이 저렴한 북측 근로자 740명을 투입했다. 북한 노동자들이 야근이나 연장근무를 해도 1인당 월 급여가 160~180달러여서 부담이 적었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정치적 리스크가 터질 때마다 이 사장은 가슴을 졸였다. 그는 “이를 잘 아는 거래처들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왔는데도 불구하고 주문 물량을 조금만 준다”며 “납품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해 주문량을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장는 지난 11일 북한으로 출경했던 직원이 개성공단에 있던 의류 완제품 1만여벌(약 5억원어치)을 가져와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아직 북쪽에는 27억원어치의 물량이 남아 있다.

손해도 손해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남한에 공장이 있는 일부 다른 업체와 달리 공장이 개성에만 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주문이 끊기지 않으려면 빨리 다른 공장이라도 알아봐야 하는데 막막하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12일 정부가 발표한 대책에 대해서도 “대출 연장, 세금 납부 유예가 무슨 피해 보상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2013년 4월 공단이 폐쇄됐을 때도 경협 보험을 21억4,000만원을 받았다가 그 해 8월 재가동이 될 때 9%이자를 더해 24억원을 갚고 나니 돈이 없어 다시 수출입은행에서 8억9,000만원을 긴급 자금으로 대출해 공단에 들어갔다. 그는 “내년까지 갚아야 하는 대출금을 아직 한 푼도 갚지 못했는데, 또 돈을 빌리라는 게 말이 되냐”고 비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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