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햄프셔에서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에게 대패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이틀 만인 11일 양자 TV토론에서 판정승을 거뒀다. 이로써 클린턴 전 장관은 9일 앞으로 다가온 네바다 주 프라이머리의 역전 발판을 마련했다.
두 후보는 이날 위스콘신 주 밀워키에서 진행된 PBS방송 주최 6차 토론에서 초반부터 강하게 대립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대학 무상등록금과 의료개혁에 1조달러(1,200조원)를 투입하겠다는 샌더스 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 “샌더스 공약대로라면 공무원 숫자가 40%나 증원돼야 한다”며 ‘큰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을 자극했다.
뉴햄프셔 압승으로 자신감이 넘친 샌더스 의원도 역공을 폈다. 경륜을 강조하기 위해 클린턴 전 장관이 ‘퍼스트레이디’ 시절을 언급하자 “당신이 지금 백악관에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면박을 줬다. 의외의 공격에 허를 찔린 듯 클린턴 전 장관은 잠시 말을 더듬고 머뭇거렸다.
승패는 후반에 갈렸다. 클린턴 전 장관의 전략 과목인 외교ㆍ안보분야로 넘어가자 차이가 확연해졌다. 시리아, 이란, 러시아 등과의 적절한 관계 설정에 대한 질문에 샌더스 의원은 “미국 혼자 문제를 풀 수 없다. 대화를 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이어 “클린턴 전 장관은 캄보디아 ‘킬링 필드’ 비극을 초래한 헨리 키신저의 조언을 받았다”며 “나는 키신저의 친구가 아니다”라고 주제와 동떨어진 말을 했다.
이에 클린턴 전 장관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키신저는 최고 전문가”라며 “복잡한 문제를 다루다 보면 (주관적 선호를 떠나) 각 분야 최고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듣는 게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청중들의 큰 박수가 터져 나온 것도 이 때였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는 “인종 갈등 문제라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보다 잘 풀어 냈을 것”이라는 발언도 샌더스 의원에게 감점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로의 외연 확장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들 계층의 절대 지지를 받는 오바마 대통령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 건 실수라는 것이다. 클린턴 전 장관도 이를 물고 늘어졌다. “샌더스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과 의견이 다르지만, 나는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당시) 충실한 조언자였다”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샌더스 의원의 발언을 클린턴 진영은 흑인 유권자 공략에 철저히 이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클린턴 전 장관이 이날 토론의 승자라고 덧붙였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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