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힙스터(Hipster)’라 부르며 턱수염을 멋스럽게 기르고 자전거 타기에 푹 빠진 영국 런던의 앤드류 리브(27)는 수년 전 시작한 수제맥주 사업이 최근 급성장하면서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1940년대 재즈 애호가를 칭하던 말에서 유래한 힙스터는 차별화된 문화를 향유하고 유행을 선도하는 젊은 세대를 상징하는 용어.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상품과 문화 소비를 배척하면서 비주류 트렌드를 이끄는 이들 힙스터는 1980~2000년대 초반 출생한 이른바 ‘밀레니얼(Millennial)세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런던 이스트앤드(Eastend)에서 4년 전 수제맥주 사업을 시작한 리브는 비교적 고가이지만 대형할인점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맥주를 원하는 힙스터 성향 밀레니얼 세대의 호응에 힘입어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리브는 “힙스터 소비자들 덕분에 지난해엔 전년보다 영업이익이 10배나 늘었다”며 “투자가치가 널리 알려지면서 전체 외부 투자액이 65만 파운드(약 11억 3,000만원)에 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호식품시장에서 뚜렷한 힙스터 파워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리브의 성공 사례를 소개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힙스터 성향의 밀레니얼 세대가 되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형 브랜드 상품보다 비싸더라도 개성을 만족시키는 이른바 프리미엄 제품들을 선호하는 힙스터의 소비특성이 불황에 온기를 전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FT에 따르면 2015년 영국의 고급 브랜드 커피숍 매출은 2002년의 3배인 487억 달러로 성장했고, 남성화장품 판매량은 2014년 기준으로 이전 5년 평균보다 8%가 늘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은 밀레니얼 세대 덕분에 유기농 식품 매출(2014년 기준)도 2003년의 2배에 달하는 294억 달러를 기록했다.
외신들은 상품보다 경험을, 보편적 가치보다 개성을 추구하는 힙스터 문화 추종자들이 특히 주류 시장에 활기를 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네덜란드 라보은행 선임 분석가 닉 페러데이는 미국 맥주시장의 19%를 밀레니얼 세대가 선호하는 수제맥주 메이커들이 장악한 상황을 예로 들면서 “젊은 소비자들은 앞선 세대보다 돈을 어떻게 쓸지, 특히 주류 등 기호식품에 대해서 더욱 많이 고민하면서 비싸지만 흔하지 않은 소비에 집착한다”고 말했다. 버드와이저, 밀러 등 메이저 브랜드를 제쳐두고 고가의 수제맥주 소비에 몰리는 힙스터의 영향력은 칵테일주의 성장세도 부추기고 있다. 영국의 유명 칵테일 상품인 피버트리(Fever Tree)는 탄자니아 산(産) 레몬에서 추출하는 재료를 사용해 비싸지만 밀레니얼 세대의 입길에 오르면서 2013년 이후 2년 새 매출이 2배로 급등했다.
밀레니얼 세대, 베이비부머 2배 달하는 소비력
전문가들은 밀레니얼 세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힙스터 스타일이 발원지인 뉴욕 브루클린과 샌프란시스코, 런던 쇼디치 지역을 벗어나 중국과 한국 등 전세계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경기회복에 도움을 준다고 진단한다. 컨설팅 법인 PwC의 바이론 카록 분석가는 “비싸더라도 기호를 충족하는 소비에 치우치는 힙스터의 영향력은 빠르게 주변으로 확산되는 경향이 짙다”고 설명했다.
힙스터 문화를 앞세운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력은 기호품뿐 아니라 레저, 여행, 부동산 등 전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일 ‘밀레니얼 세대가 주식시장을 바꾸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레저와 여행 관련 주식의 상승세가 밀레니얼 세대의 적극적인 소비성향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통신에 따르면 스키리조트 업체인 베일 리조트(Vail Resort)의 최근 주가는 2009년보다 7배나 치솟았고 숙박체인 에어비앤비(Airbnb)의 기업가치(255억 달러)는 백화점 메이시(Macy)와 가전판매점 베스트바이(Best Buy)의 가치 합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앤드류 오스왈드 브라이튼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는 손에 잡히는 재화에 집착하지 않는다”며 “레저 관련 시장의 활황은 새로운 욕구를 찾아 소비의 장을 넓히는 밀레니얼 세대 덕분”이라고 진단했다.
지갑을 닫은 베이비부머를 대신해 시장의 주력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의 영향력은 시간이 갈수록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ㆍ코트라)에 따르면 미국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력은 지난 5년 동안 연평균 3%씩 증가해 전체 미국 내수의 21%(2015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향후 20년 동안 부모 세대의 재산 20조 달러를 상속받게 될 이들 세대는 2030년 무렵 전체 미국 인구의 30%를 웃돌 전망이다. 장기침체에 빠진 글로벌 시장에서 이들의 톡톡 튀는 소비성향이 멈추지 않는 동력을 제공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인 이유이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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