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스프링캠프가 차려진 미국 애리조나 투산. 배팅 케이지에 들어선 이진영(36)의 방망이가 힘차게 돌아갈 때마다 주변에 있던 선수들의 감탄사가 쏟아진다.
이진영은 kt 선수들에겐 한없이 우러러 보이는 존재다. 1999년 쌍방울에서 데뷔한 그는 프로 17년 통산 타율 3할3리(6,059타수 1,836안타)에 2,000안타를 눈앞에 둔 현역 정상급 타자다. 팀마다 ‘레전드’로 불리는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한 두 명씩은 있지만 지난해 신생팀이었던 kt 선수들에겐 와 닿지 않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통산 안타 2위(2,100개)의 장성호(39ㆍKBS N 스포츠 해설위원)가 지난해 잠시 팀에 몸담았지만 부상 탓에 후배들과 많은 교감을 나누지 못했다.
막내 구단 선수들의 열정을 이해한 이진영은 이른 오전부터 야간 훈련까지 고된 일과가 이어지지만 틈나는 대로 세심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는 “몸은 힘들어도 팀 분위기가 너무 좋다. 후배들의 의욕이 정말 대단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진영은 이적생이지만 최고참이다. 장성호와 신명철(38)의 은퇴로 동기생인 김상현(36)과 함께 팀 내 서열 1위가 됐다. LG 시절만 해도 이병규(42)와 박용택(37)이라는 ‘큰 산’에 기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 후배들을 이끌어야 한다.
프로야구 전 구단 선수들이 동료, 선ㆍ후배지만 다른 팀으로 이적하게 되면 어색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털어놨던 이진영이다. 하물며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유니폼을 갈아 입은 이진영에겐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적생이라는 신분보다 최고참이라는 책임감을 앞세워 의도적으로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서며 적극적으로 전지훈련 분위기를 다잡고 있다. kt 관계자는 “갑작스럽게 팀을 옮긴 후유증이 남아 있을 법도 한데 내색 없이 적극적으로 후배들을 독려하는 모습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솔선수범하는 이진영의 빠른 적응에는 SK 시절 스승과 제자로 만난 후 9년 만에 재회한 조범현(56) 감독의 신뢰가 큰 힘이 됐다. 이진영은 이적 직후“감독님이 너무 부드러워지셔서 놀랐다”고 했다. 조 감독의 성향이 변했을 수도 있지만 프로 초년병이었던 SK 시절의 이진영과 지금의 베테랑 이진영을 대하는 차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LG 시절에도 이진영은 누구보다 후배들과 스스럼없는 사이였지만 자신의 입지가 점차 좁아진 탓에 지난해엔 조언은 고사하고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이진영은 지난 8일 두 번째 청백전에서 첫 홈런을 쏘아 올리며 또 한번 후배들에게 감탄의 시선을 받았다. 이진영은 “같은 선수 입장에서 가르침은 코치님께 배우고, 야구를 오래 한 선배로서 줄 수 있는 건 노하우다. 아낌없이 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진영의 가세로 공격력만큼은 단번에 상위권으로 평가 받는 kt와 커리어에 걸맞은 힘을 실어준 팀을 만난 이진영 모두에게 ‘윈윈’이 될 가능성이 높은 시즌이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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