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44편서 성차별 묘사 65건
방송ㆍ광고 심의 규정 개정 움직임
지난해 하반기부터 TV에서 방송되고 있는 한 세탁세제 광고.
“어머니 오신다는데?”남편으로부터 시어머니가 집에 들른다는 소식을 접한 아내는 남편의 누런 와이셔츠를 보고 당황한다. 허겁지겁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와이셔츠를 하얗게 만들 방법을 묻고, 세제를 이용해 셔츠를 다시 세탁한다. 집을 방문한 시어머니는 감시하는 듯한 눈초리로 아들의 와이셔츠를 아래 위로 훑어보고는 흡족해하며 며느리를 쳐다본다. 남편의 옷을 깨끗이 관리하는 게 전적으로 아내의 책임인 듯한 광고가 나가자, 이 광고 동영상이 게시된 온라인에는 ‘여자만 빨래하나’, ‘구시대적 광고’라며 항의성 글들이 쏟아졌다.
성차별적 요소를 담은 내용들이 걸러지지 않고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현상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총 44편의 드라마(85회분)를 대상으로 양성평등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분석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2015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이중 65건이 성차별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29편에서 62건, 시사ㆍ토론 프로그램은 25편에서 11건, 교양 프로그램은 26편에서 48건이 성차별적 내용으로 파악됐다.
지적된 내용은 여성을 종속적이고 보호 받아야 할 대상으로 묘사하거나, ‘남자가 대범해야지’, ‘남자가 우는 거 아니야’ ‘여자는 드센 건 안 돼. 버들가지처럼 유들유들 해야지’등과 같이 성역할 고정관념을 담고 있는 표현들을 사용한 경우다. TV광고의 경우 2014년 분석에서 33건이 지적을 받았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세제나 가전제품 광고는 특히 가정의 일은 여성의 몫처럼 표현하는 경우가 잦다”며 “이런 광고들에 계속 노출될 경우 삶 속에서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일은 요원해진다”고 꼬집었다.
한 여성이 남성에게 기분 전환을 위해 핸드백을 사달라고 하고, 핸드백을 받으면 기분이 풀리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햄버거 광고(2015년 10월)와 ‘다 맡기더라도 피임까지 맡기진 마세요’라는 문구로 여성은 남성에게 모든 것을 맡기며 의지하는 것을 전제 한 보건복지부의 공익광고(2014년 12월) 등도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런 지적이 잇따르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양성평등 조항을 구체화하는 등 올해 상반기 중 방송, 광고 등의 심의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기로 했다. 방심위 방송심의기획팀 관계자는 “성차별적 요소를 담은 광고 등에 대한 민원도 접수되고 있는 만큼, 전문가들과 협의해 개정을 하겠다”고 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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