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위기의 나라를 구한 영웅이자 소통의 리더십을 실천한 지도자였다. 그는 1940년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 독일이 대공황의 여파로 휘청대던 영국으로 진군하자 어렵게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과 2,000여 통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얻은 성과였다. 미국의 참전 못지 않게 중요한 처칠의 공적은 영국 국민에게 전한 승전의 희망이었다. 그가 영국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 넣기 위해 고안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V’자 손짓이다. 쉽고 친근해 누구나 따라하는 이 제스처는 나치 독일의 ‘하일 히틀러’에 맞서 애국심을 일깨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다큐멘터리로도 방송됐던 ‘행복의 리더십’(RHK 발행)이란 책은 이처럼 소통에 능했던 처칠의 리더십을 소개하고 있다.
얼마 전 청와대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보낸 박근혜 대통령 생일 축하 난을 거부했다가 뒤늦게 받는 소동이 벌어졌다. 난은 8시간 만에 주인을 찾아갔지만, 처칠에 한참 못 미친 청와대의 소통지수는 이미 낙제점을 받은 뒤였다. 소통에 관한 청와대의 무신경은 이게 끝이 아니다. 지난해 말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국회 영결식장에 조화를 보내지 않아 유족들이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있던 박 대통령의 조화를 옮겨 온 적도 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회장으로 거행된 전직 국회의장의 영결식에는 대통령이 3단 조화를 보내도록 한 의전 규정이 엄연히 존재한다. 공교롭게도 고인은 집권여당의 직권상정 요구를 뿌리친 정통 의회주의자로 유명했다.
친정인 새누리당의 쟁점법안 직권상정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정의화 국회의장과 청와대 사이가 매끄럽지 않은 것도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정 의장이 핫라인으로 두 차례나 직접 전화했지만 박 대통령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의장공관 저녁식사에 박 대통령을 초대했지만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일화가 2014년 공개되기도 했다. 정 의장은 지금도 “우리나라에선 대통령이 국회의장을 아래로 보는 것을 너무 당연히 여기는 문화가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엄연히 삼권분립과 의회민주주의가 법으로 보장된 나라다”라는 말을 곧잘 한다.
쟁점법안과 선거구 획정안 처리를 놓고 국회가 공전하는 진짜 이유가 정 의장 말대로 대통령의 국회 경시 태도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요즘 대통령이 직접 나서 소통하는 리더십은 없고,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에서 틈만 나면 국회의원들을 애 나무라듯 야단치는 모습뿐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리더의 고독에 찬 결단이 필요할 때도 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안팎의 사정이 좋지 않은 지금이 그런 때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국민이 원하는 리더십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한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은 국민소통형이 되어야 한다’는 응답(45%)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소통 리더십에 대한 갈증은 크다. 천재지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직권상정 요건이 엄격히 제한돼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국회의장에게 무작정 법안처리를 밀어붙여달라고 주문하는 것은 답답함의 호소일 수는 있어도 문제의 해결 방법은 아니다. 오히려 국민들은 17시간 마라톤협상 끝에 야당과 대연정을 성사시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주말마다 사우나에서 상대편 의견을 청취한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처럼 대통령이 직접 나서 반대 의원들을 설득하고 여당에 협상 재량권을 주는 포용력 있는 모습을 더 기대한다.
이제 10여일 지나면 박 대통령은 취임 3주년을 맞는다. 등산으로 치면 하산을 시작할 때다. 산에서 내려올 때는 신체의 무게중심이 높아 부상이 더 잦다. 몸을 낮추고 타인과 눈높이를 맞추기에 더 적합한 때다. 뛰어난 군인이자 정치인이었지만 독불장군이기도 했던 처칠은 말년에 의회와 척을 지고 쓸쓸히 퇴장했다. 박 대통령이 그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다른 건 몰라도 의회와는 소통을 재개해야 한다. 그 시작이 꺼져 있던 전화기에 다시 전원을 켜는 것이라면 효과 백배일 것이다.
김영화기자 yaa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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