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제도권 정치를 보면, 구여권 출신 인사들이 그 무대를 장악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새누리당이야 제5공화국 민정당의 적통을 잇는 정당이니 그렇다 치겠지만, 제1 야당인 더민주당도, 그리고 20세기 후반 이후 우리 정치사에 계속 반복하는 주제인 정치 쇄신을 외치며 이곳 저곳에서 모인 국민의당도, 모두 그 대표 얼굴을 과거 여권 인물들이 맡고 있다. 흔히 언론에서 우리 제도권 정치의 ‘우향우’라고 표현되는 이런 현상에는 사실 단순한 이념적 보수화 외에 또 다른 것이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70대 이상 원로들에 의존하는 정치 문화, 또는 노인정치(gerontocracy)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더민주당의 총선 책임자에서 당권까지 잡게 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1940년생 우리 나이로 77세이며, 국민의당의 ‘사령탑’이라 불렸던 윤여준 전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은 그보다도 한 살이 많다.
노인들의 연륜과 경험을 존중해서 그들에게 주요 결정을 맡기는 관행은 과거 농촌사회의 전통에서부터 내려온다. 전근대 농촌사회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상업화된 체제와는 달리, 급작스런 삶의 변화가 거의 없는 채로 해마다 유사한 상황이 되풀이되었다. 변동이라면 계절에 따른 변화 정도가 가장 두드러졌을 뿐이었다. 유럽이나 아시아의 농민들은 모두 이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계절의 리듬에 따라 그들의 일상을 맞추면 그만이었다. 이런 단조롭고 익숙한 사회를 뒤흔들 만한 변수는 농촌사회 내부에서는 나타나기 어려웠고, 대부분 전쟁이나 자연재해처럼 외부로부터 왔다. 농촌사회의 노인들은 바로 이러한 외부 변수들을 젊은이들보다 삶에서 먼저, 그리고 자주 겪어보았다는 점에서, 그들의 권위를 쉽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노인들이 의사 결정에 주도권을 쥐었던 것은 전근대 농촌사회에서만 벌어진 현상은 아니었다. ‘먼저’ 겪은 경험 자체를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는 급변과 쇄신의 현대사회 속에서도, 노인들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심심치 않게 목도되었다. 이런 경우는 이른바 좋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런 시대의 주역 세대들이 가진 권위 등이 사회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질 때 주로 나타났다. 가장 두드러진 예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의 재건을 이끌었던 인물들 중 많은 수가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즉 1914년 이전에 공적 활동을 시작했던 당시 70대가 넘는 노인들이었다. 콘라트 아데나워, 알치데 데 가스페리 그리고 루이지 에이나우디 등은 데카당스, 경제공황, 파시즘 등으로 점철되었던 1920~1930년대를 잊고 싶어하던 전후 유럽인들에게 1914년 이전 ‘정상’ 상태로의 복귀를 상징하는 인물들이었다. 한편 1970년대 소련에서도 70대 이상의 노인들은 정치권의 핵심에 있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가 대표하던 그들은 1930년대 소련 경제의 산업화와 고속 성장 당시의 젊은 주역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장기간 집권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 우리의 노인정치 역시 과거 경제 성장 시대에 대한 그리움 및 이것의 재현 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로부터 파생된 것 같다. 정당마다 ‘성장’론을 내세우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사실 노인들의 정치 참여는 순기능을 하는 때가 많다. 그들의 혜안이 크게 필요한 경우는 고위 정책 결정부터 일상까지 매우 다양하다. 현재 우리 정치에 노인들이 대표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가 될 게 없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노인정치의 등장을 가능케 한 과거에 대한 환상이나 자의적 해석, 그리고 그 과거에 매인 생각이다.
대략 2000년대 후반부터 우리 사회에는 생각이 과거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주요 권력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 초기 인프라 투자 시대처럼, 땅을 파고 강을 메우면 경기가 살아나고 경제가 성장하는 줄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월남 패망론 등을 내세우면서 냉전 시대 반공 이데올로기와 공포정치를 통해 우리 사회를 끌고 나가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리고 세 자녀 갖기 운동 등을 운운하며, 우리 사회가 개발 독재 시대처럼 국민 동원 캠페인의 방식으로 움직이리라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노인정치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이것이 우리의 사고를 과거 지향적으로 만드는 기제가 된다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과거 연구자인 역사가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의아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과거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 속에 묻혀 있으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와 다르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더 나아가 현재는 과거처럼 운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기 위해서이다. 과거의 제도와 관행을 대충 알거나 자의적으로 기억하면서, 이를 현재에 무비판적으로 대입시키려는 사람들이 힘을 얻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최근 과거의 ‘화려했던’ 날에 매달리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보며, 더 세밀하고 철저한 과거 학습이 필요함을 새삼 느낀다.
광주과학기술원 교수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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