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시간을 운전해 들어선 서울은 평온했다. 고향에 모인 가족과 친척들은 덕담을 주고받은 후 경제, 취업 걱정을 했지만 안보 걱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만 지나가는 말 한마디. 둘이 저러다 말겠지.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는 다각적인 의미를 갖는 고도의 정치ㆍ군사 행위다. 국내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두 사건은 5월 초로 예정된 제7차 노동당대회를 앞두고 정권과 인민의 결속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데 유용할 것이다. 군사적 측면에서는 북한 스스로 말하듯이 핵억제력을 확보하여 안보 불안을 크게 축소할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은 관련 과학기술적 성과를 ‘경제강국 건설’의 밑거름으로 쓰려 할 것이다. 이쯤 되면 당대회에서 김정은이 ‘제1’을 떼고 당 비서나 국방위원장으로 선출되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군 기지와 동맹국들은 물론 미 본토까지 핵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능력은 중국에게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주도의 봉쇄가 강화되는 추세 속에서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기는커녕 힘껏 끌어당길 필요가 커졌다. 김정은 정권은 통일보다는 ‘경제ㆍ핵 병진노선’을 성공시켜 남한과의 체제경쟁에 불을 지피려 하는 것 같다.
핵 능력 강화로 북한이 얻을 많은 효과는 우리에게는 총체적인 안보 위기로 탈바꿈한다. 우선 국가안보 위기다. 국민의 안전과 국토의 평화가 위기에 처했다. 이런 상황이 오기까지 정부는 무얼 했는지 묻고 싶다. 정권안보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이 난국을 해결하지 못하면 경제 실정에 안보 무능까지 겹쳐 국민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 정권의 무능과 국내정치적 이용의 유혹이 결합할 때 안보문제는 정권안보를 넘어 국가안보, 민족안보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유아독존형 지도자들끼리의 다툼은 대화를 사치로, 대결을 필연으로 만들고 국민을 눈 밖으로 밀어낸다. 여차하면 제2의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날 개연성은 상존한다. 북한발 한반도 위기는 동아시아 지역안보 위기이기도 하다. 관련국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복잡한 셈법으로 공동 대응이 힘들다.
복합 안보위기에 직면해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대응은 단순하다 못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소리 높이고 있는 대북한 제재로 북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우선 처벌 시늉이라도 내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 발사 자체가 제재의 실패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뼈아프고 실효적인 제재’ 방안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다. 제재 외에 주목할 만한 조치가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ㆍ사드) 도입 검토다. 미 국방당국과 군수업체는 호기를 잡았다. 사드 배치가 대북 제재용인지, 그걸 명분으로 한 중국 봉쇄용인지는 뜨거운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한반도 위기가 동아시아 위기로 비화할 조짐마저 있다. 이로써 박근혜정부식의 균형외교는 파산을 맞았다. 국제분쟁을 특정 행위자의 성향 탓으로 보는 것은 협소한 시각이다. 분단과 전쟁 이후 한번도 미국의 핵공격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북한이 미국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련국들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없다. 지난 70년 동안에. 왜일까? 한반도 비핵화를 북핵 포기로 축소해 보는 것도 문제다. 북핵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법 모색에서 역사구조적 접근이 중요한 이유다.
제재일변도의 대처가 단순함의 편리함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씻을 수 없고 무거운 후과를 초래한다. 남북대결 지속, 군사비 증대, 핵 분단체제의 확립, 군사주의의 발호, 그리고 남북 대결을 이용해 자신들의 갈등을 조절하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관계. 거기에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국내정치적 이익까지? 복합 안보위기에 직면해 위기를 증폭시키는 언동은 중단해야 한다. 목표와 대전략의 부실 속에서 단순 전략으로는 자기만족도 기약할 수 없다. 외교ㆍ안보ㆍ정보 정책 책임자들의 전면 교체를 검토할 시점이다. 국민들은 북풍에 흔들리지 않는다. 편안히 일하고 잠들고 싶을 뿐이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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