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음.
로봇이 등장한다. 인류에게 신천지를 열어 줄지, 재앙이 될지를 두고 격한 논쟁의 대상이 된 존재가 소재이니 화제를 끌만도 하다. 하지만 대중의 시선은 개봉 전부터 차가웠고, 결국 흥행 참패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지난달 27일 개봉해 5일까지 모은 관객은 35만7,861명. 설 연휴를 겨냥해 극장가에 출사표를 던진 영화치고는 초라하기만 한 흥행 성적이다. 공상과학(SF)영화 ‘로봇, 소리’는 여러모로 충무로에 반면교사가 될만하다.
‘미스터 고’와 닮은 꼴 실패
‘로봇, 소리’가 제작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부터 의문이 들었다. 우선 배우였다. 실종된 딸을 애타게 찾는 해관을 연기한 이성민은 역할로만 따지면 딱히 나무랄 데가 없다.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소탈한 외모와 단단한 연기력이 그의 무기다. 해관을 품어내기에 딱 맞는 좋은 배우이긴 하지만 거의 홀로 총제작비 70억원의 제법 중량감 있는 영화를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제목이 암시하듯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로봇, 소리다. 지구를 내려다보며 지상의 명령에 따라 타깃의 좌표를 전송해주는 무정한 인공지능 기계인 소리는 알 수 없는 과정을 통해 감정을 가지게 된다. 인공지능이 자체 진화를 할 수 있고 그 진화의 형태가 감정의 생성이라는 영화의 설정은 제법 흥미롭다. 해관을 도와 해관의 딸 유주 찾기에 나서며 해관과 소리가 우정을 나눈다는 이야기 전개는 가족애와 버무려지며 따스한 감성을 빚어낸다.
제작진은 아마 로봇, 소리의 활약에 사람들이 눈길을 줄 것이고, 이성민의 부족한 티켓 파워를 메워주리라는 기대를 했을 만하다(목소리 연기는 더군다나 심은경이다!). 제아무리 상영 초기 관객몰이가 중요하다 해도 입 소문에 기대면 충분히 흥행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을 듯하다. 하나의 장르로 분류해야 한다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여성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강동원이 아닌 다음에야 티켓 파워를 확실히 발휘하는 배우가 없는 게 또 현실이니까.
그래도 한국 극장가는 스타 파워에 시장이 크게 좌지우지한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배우와 감독의 면면에 따라 크고 작아지는 경향이 짙다. 설경구 등 좀 더 무게 있는 중년배우를 캐스팅했으면 흥행 성적이 어땠을까. 충무로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던 로봇 이야기를 꽤 완성도 있게 풀어낸 영화이다 보니 아쉬움이 더 진하다.
‘로봇, 소리’는 2013년 여름 시장을 겨냥했던 ‘미스터 고’와 닮은 꼴이다. ‘미스터 고’는 성동일과 중국 아역 배우 쉬자오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나 제목이 말하듯 주인공은 컴퓨터그래픽(CG)으로 창조해낸 고릴라 링링이다. 성동일과 쉬자오의 이름이 지닌 무게는 순제작비 225억원이 들어간 여름 블록버스터치고는 가볍다. ‘오! 브라더스’(2003)와 ‘미녀는 괴로워’(2006), ‘국가대표’(2009)로 관객 파이를 계속 키워왔다 해도 김용화 감독의 이름만으로는 관객들의 눈길을 잡기엔 버거운 제작비였다.
특히 미스터 고와 ‘호흡’을 맞추며 관객의 마음을 울려야 하는 쉬자오의 인지도가 문제였다. 쉬자오는 홍콩 스타 저우싱츠가 주연과 연출을 겸한 ‘장강 7호’(2008)로 국내에 슬쩍 얼굴을 알린 정도다. 그것도 자신의 실제 성별과 다른 남자 아이였다. 제작진은 털 한 올 한 올까지 심혈을 기울인 고릴라의 활약에 기대를 걸 수 밖에. 하지만 관객은 야구모자를 쓴 고릴라로 장식된 포스터에서 생경함을 느꼈다(‘미스터 고’는 허영만 작가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삼았다고 하나 캐릭터가 보편적 인지도를 얻지는 못했다). 낯선 고릴라 캐릭터가 더군다나 홈런타자로 활약한다니… 흥행 성적 132만8,890명은 200억원 이상이 들어간 영화로서는 재앙이라 할 수 있었다.
판타지의 힘은 디테일
‘로봇, 소리’는 할리우드의 유명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로봇의 모양새는 ‘스타워즈’시리즈의 로봇 R2D2와 닮았다. 원통형 몸 위에 올려진 반원형 머리가 투박하면서도 소박하기에 호감을 준다.
이야기 전개는 이젠 고전이 된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티’(1982)의 궤적을 따라간다. 부모의 불화 때문에 상실감에 젖은 소년 엘리어트가 지구를 찾았다 낙오된 외계인과 우정을 나누는 사연은 ‘로봇, 소리’의 원형이다. 정보기관원들이 외계인과 로봇의 행방을 쫓고, 주인공의 주변인들이 적극 협조하며 외계인과 로봇을 원했던 곳으로 떠나 보내게 되는 결말도 비슷하다. 해관도 엘리어트처럼 일상에 침투한 이질적 존재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고 정신적 성장을 이룬다.
36년의 간극을 두고 만들어진 영화이니 ‘로봇, 소리’는 좀 더 진전된 이야기의 살을 부친다. 로봇은 원래 전세계 통신을 감청하던 인공위성이었다는 설정으로 통신 만능시대 정보당국에 의해 자행되는 도ㆍ감청 문제를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해관의 딸이 당한 불의의 사고는 정부의 무능력을 상징하고, 소리의 존재는 (미국과 한국) 정부의 부도덕성을 드러낸다. 영화는 그렇게 해관의 사적 영역에 머물 사연을 공적 영역으로 확장하며 사회성을 띤다. ‘로봇, 소리’의 주요 미덕이다.
‘로봇, 소리’의 장면 중 가장 아쉬웠던 점은 해관이 오랜 친구 구철(김원해)을 만나는 장면이다. 고장이 난 소리를 고치러 구철을 찾아가 해관은 이런 식으로 말한다. “내가 위성 하나를 주었는데 좀 고쳐주라.” 대수롭지 않은 듯, 구박하는 말투로 구철이 답한다. “야, 그 다 고장 난 위성 어디에 쓴다고 가지고 오냐. 그냥 버려!” 아무리 고장이 났다 해도 인공위성을 길거리에서 주운 텔레비전 수준으로 취급하는 대사는 제법 면밀하게 이야기 조각을 맞춰가던 영화의 김을 빼놓는다. ‘미스터 고’에서도 이처럼 감정이 따라갈 수 없는 장면이 나온다. 중국 소녀 웨이웨이는 할아버지가 남긴 빚에 시달리다 고릴라와 함께 머나먼 한국까지 와 돈을 벌게 된다. 웨이웨이의 할아버지는 야구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다. 중국에서 야구를 보다니, 중국에서 야구 도박으로 패가망신한다니. 모든 영화가 다 그렇겠지만 판타지나 SF영화는 개연성이 더 중요하다. 관객을 설득시키는 힘은 결국 디테일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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