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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선 술 세다고 자랑 말라 전해라~”

입력
2016.02.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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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술집에선 주문부터 남달라

상온서 보관한 미적지근한 소주 즐겨

제주도민 10명 가운데 4명은 ‘주당’

제주도 술집에서는 술을 주문할 때 독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선 소주를 주문하면 종업원이 가장 먼저 “어떤 걸로 드릴까요? 차가운 것 드려요?”라고 묻는다. 이 때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눈만 멀뚱멀뚱 종업원을 바라보는 이들은 십중팔구 관광객이거나 제주에 살아본 적이 없는 외지인일 것이다.

이에 반해 자연스럽게 “차가운 것으로 줍써(주세요)” 또는 “노지 것으로 줍써(주세요)”라고 답한 이들은 제주토박이거나 제주 술문화를 좀 아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차가운 것’은 냉장고 안에서 시원하게 보관한 것이고, ‘노지 것’은 냉장고 밖 상온에서 보관한 것을 말한다. ‘노지’는 비닐하우스가 아닌 밭에서 재배한 ‘노지 감귤’에 따온 것으로, 안에서가 아닌 밖에서 그대로 나둔 소주를 노지 감귤에 빗대어 말하는 것이다.

일부 술꾼들은 ‘차가운 소주’를 ‘전기 넣은 것’(냉장고가 전기로 작동되는 것을 착안해 표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차가운 것’과 ‘노지 것’ 중 하나를 골랐다면 종업원의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진다. 우스개 이야기 중 화장실에서 귀신이 나타나 “하얀 휴지 줄까, 빨간 휴지 줄까”라고 말하는 것처럼 종업원이 “하얀 것 드릴까요, 파란 것 드릴까요?”라며 2차 선택을 종용한다.

제주 술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는 소주는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오리지널 한라산 소주와 초록병에 담긴 한라산올래가 있다. 투명 유리병에 담긴 한라산 소주가 ‘하얀 것’이고, 초록병 한라산올래가 ‘파란 것’이다.

한라산올래는 병 색깔이 분명 초록색이지만, ‘파란 것’으로 불리는 이유를 제주 토박이들도 잘 모른다. 한라산올래가 출시될 때부터 그냥 ‘파란 것’으로 불렸다. 제주 사람 모두가 색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주에서는 초록병 한라산올래가 추호의 의심도 없이 ‘파란 것’으로 통용될 뿐이다.

소주 주문 방법을 설명했으니 다음은 술맛이다. ‘하얀 것’ 한라산소주는 21도의 꽤 높은 도수를 자랑한다. 그래서 제주에서도 술 좀 마신다는 애주가들이 주로 찾는다. 애주가들은 목 넘김이 편한 ‘시원한 것’보다는 ‘노지 것’을 주문해 미적지근하게 상태로 더 독하게 마신다. 젊은 층보다는 나이가 좀 있는 주당들이 주로 찾는다.

반면 ‘파란 것’ 한라산올래는 도수가 ‘하얀 것’보다 훨씬 낮은 17.5도다. 주로 젊은 층과 여성들이 주로 마시며, ‘노지 것’보다는 목 넘김이 쉬운 ‘차가운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육지부 소주가 제주가 진출하면서 한라산소주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제주에서는 한라산소주에 대한 선호도가 훨씬 높은 편이다.

끝으로 제주에서 술 세다고 자랑하면 안 된다. 제주도민 10명 중 4명은 주 1회 이상 폭음을 하는 ‘주당’이라는 통계자료가 있다. 또 2014년도에 통계청 조사 결과 제주지역 고빈도 음주비율(주 3회 이상 음주한 비율)은 13.2%로 전국 평균(10.2%)을 크게 상회하고, 월간음주비율(최근 1년 동안 한달에 1회 이상 음주한 비율)은 전국 1위를 차지했다.

또 지난해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제주도민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 이유를 분석한 결과 유별난 ‘괸당(친인척) 문화’를 바탕으로 한 사교모임이 많고, 지리적 특성상 근무지와 거주지의 근접성이 높아 퇴근 후 시간이 많은 반면 여가 활동의 다양성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술자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제주에 여행을 온 관광객들은 제주는 공기가 좋아 술도 잘 취하지 않는다고 한마디씩 한다. 하지만 술이 잘 취하지 않는 비결은 공기보다는 물 때문이라는 게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술 이기는 장사가 없듯이 아무리 제주의 물이 좋고 공기가 좋더라도 과음하면 몸도 마음도 고생이다.

제주=김영헌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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