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할까요? 사랑스러운 자식을 비롯한 가족부터 일, 돈 등 다양한 답이 나오겠지요. 그 중에는 ‘나를 믿어주는 좋은 친구’도 한 자리 차지하리라 믿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 때 맺어진 관계라면 그 의미는 더 크겠지요.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평생 가기 쉬운 것도 그 때문일 테고요. 오늘은 프랑스 동화 ‘스피노자와 나’를 통해 예상치 못한 만남을 계기로 세대는 다르지만 함께 성장하는 두 인물인 사샤와 스피노자를 만나보겠습니다.
열네 살 소년 사샤는 중학생이 되며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가 힘이 듭니다. 이름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해 가슴 깊이 새겨진 원망과 갈등은 사춘기의 한복판에서 방황하는 사샤의 힘겨움을 부채질하지요. 결국 사샤는 유급을 거쳐 퇴학을 당할 위기에 내몰리고 엄마와 외할머니는 안타까워하지만 해결 방법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샤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불량 학생 마티아스와 어울리며 위험천만한 모험에 접어들려는 찰나 마티아스보다 더 무서운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철학자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35년 동안 읽어 온 취미 때문에 ‘스피노자’라고 불리며 자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는 이웃집 아저씨입니다. 스피노자의 협박어린 개입 덕분에 사샤는 그의 식당에서 일하며 공부해야 하는 벌 아닌 벌을 받게 됩니다. 그 와중에 두 사람은 심각한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결말은 해피엔딩입니다. 안전그물을 쳐 주고 자신을 도와줄 스피노자와 외할머니, 엄마의 믿음을 확인한 사샤는 차근차근 준비해 아빠를 찾아가 보겠다고 결심하고, 험상궂은 인상으로 폐쇄적인 삶을 살던 스피노자에게도 좋은 친구들이 생깁니다.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스피노자와 외할머니, 사샤와 엄마가 바닷가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찍은 사진에 입꼬리 살짝 올리며 책장을 덮게 되는 따뜻한 동화입니다.
이 동화는 길지 않은 분량에 단순하면서도 롤러코스터 타듯 변화무쌍한 줄거리 전개에다 삽화까지 많아 술술 읽힙니다. 두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우정, 편견, 가족, 학습, 선택의 문제까지 다양한 생각거리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어린이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인 독자라면 이름만 가물가물한 철학자 스피노자가 먼저 떠오르겠지요. 하지만 초등학생 독자라면 앞 표지에 떡 하니 자리 잡은 장미문신 팔뚝에 앞치마를 걸친 아저씨 이름이 ‘스피노자’이겠거니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책을 막 잡은 아이들에게 철학자 스피노자에 대한 정보는 굳이 제공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머리 아픈 철학책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니까요. 뒤 표지를 살펴보면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보입니다. ‘무서운 얼굴 뒤에 숨은 보석 같은 마음’이라는 카피를 비롯해 짤막하게 실린 내용을 보면 줄거리에 대한 감이 잡힙니다. 프랑스 초등학생들이 직접 뽑는 문학상인 크로노상을 수상했다는 정보에 호기심이 좀 더 생길 듯합니다. 이처럼 가볍게 흥미를 유발하고 본격적인 책 읽기에 들어갑니다.
책을 읽는 동안 어린이들은 사춘기 소년 사샤의 고민과 방황, 스피노자의 과거, 사샤의 엄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스피노자에 대한 편견과 만나게 됩니다. 아빠에 대한 사샤의 고민이 이해되다 안 되다 할 테고, 스피노자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좀 찔리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느낌과 생각들을 정리하는 활동으로 사샤와 스피노자를 한데 불러 인터뷰를 해 볼까요? 두 사람에게 물으면 좋을 만한 질문지를 함께 만든 후, 엄마나 아빠가 기자가 되어 질문을 하고 어린이는 해당 인물이 되어 답해봅니다. 스피노자에게는 ‘상관도 없는 사샤를 굳이 도우려 한 까닭’이나 ‘철학을 공부하는 목적’, 사샤에게는 ‘아빠에 대한 생각’, ‘엄마가 스피노자를 만나지 말라고 했을 때 떠오른 생각’, ‘스피노자 아저씨가 쓴 원고가 책으로 나오게 되었을 때의 마음’ 등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들과 관련한 질의응답이 되도록 합니다. 이러한 활동은 책 내용에 대한 사실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인물의 마음을 추론하고 인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습니다.
스피노자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도 이 동화에서 크게 드러나는 주제입니다. ‘편견’과 비슷한 ‘고정관념’의 뜻을 알아보고 사람들이 가진 편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편견을 갖고 상대방을 보거나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 나쁠지 토론해 봅니다. ‘남자라면 울음을 보여선 안 돼’, ‘여자라면 얌전해야지.’이런 생각은 고정관념이 되겠지요. 편견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남자가 울다니 창피한줄 알아라!”, “전과자라니 위험해. 가까이 하지 마!”하면서 상대를 내 마음대로 재단하고 그 잣대로만 바라보는 것이 편견입니다. 고정관념이나 편견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망가트리고 소통을 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그런 의도에서 작가는 어렵디 어려운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번역하고 해석하는 전과자를 중심인물로 등장시켰을 것입니다.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내려놓고 세상을 바라보면 삶의 반경은 한층 넓어집니다. 그 일이 때로 불안과 위기를 불러올지 모르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며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가야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런 점에서 스피노자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어린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간접경험이 될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만나게 되는 소소하면서도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사샤가 되어 주장글을 쓰거나 사샤와 스피노자의 마음을 생각하며 감상문을 쓰는 것 모두 마무리 활동으로 좋습니다. 글을 쓰고 스스로 다듬어 발표하며 새로 만난 두 친구, 스피노자와 사샤를 새로운 추억으로 저장해 두세요. 그리고 편견을 버리고 더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날들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정화(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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