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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청춘'과 왜 다르지?...아이슬란드 '반전의 오로라'

입력
2016.02.0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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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를 지켜보는 관광객들의 모습. 삼각대가 없어 감도를 최대한 높여 찍었다.
오로라를 지켜보는 관광객들의 모습. 삼각대가 없어 감도를 최대한 높여 찍었다.

아이슬란드 겨울 여행의 최대 단점은 낮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오전 11시에나 밝아져 오후 4시면 해가 지기 때문에 실제로 관광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6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투어를 끝내고 오후 6~7시에 레이캬비크에 돌아와도 식사를 하고 나면 저녁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게 된다. 그래서 아이슬란드의 여행 성수기는 백야를 즐길 수 있는 여름이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겨울 여행은 그 모든 불편을 상쇄할 단 하나의 강력한 매력이 있다. 바로 오로라다. ‘자연이 펼치는 가장 스펙터클하고 신비로운 쇼’, ‘신의 영혼’, ‘천상의 커튼’등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된 오로라는 사진과 영상으로만 접한 미지의 세계. 아이슬란드에서는 9월부터 4월 중순까지 오로라를 관찰할 수 있지만 가장 좋은 시기는 밤이 긴 11월부터 2월까지다. 여행을 떠난 게 1월이었으니 아이슬란드로 향하는 내내 ‘오로라를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하는 기대에 부풀었다.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첫 날, 레이캬비크에서 미리 예약해 둔 오로라 헌팅 투어를 떠났다. 많은 투어업체들이 오로라를 잘 볼 수 있는 장소로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다양한 오로라 헌팅 투어 상품을 판매한다. 더 추운 곳, 불빛이 없는 더 깊은 곳일수록, 담요 등 방한용품이 추가 될수록 상품 가격이 비싸진다. 오가는 시간과 오로라를 관찰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3~5시간이 걸린다. 내가 이용한 투어는 그레이라인(Gray Line)의 ‘Northern Lights Mystery’. 가격은 6,400크로나(약 6만원)였다.

오로라가 잘 보이는 겨울이라 할 지라도 변화무쌍한 날씨가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오로라 투어를 마친 다음날에는 눈보라가 치는 등 날씨가 좋지 않아 예약된 모든 오로라 투어가 취소됐다. 예약한 투어가 날씨 사정으로 취소될 경우 다른 날짜로 다시 예약해야 한다.

오후 6시 15분, 미니버스가 오로라 헌팅 투어를 떠나는 관광객을 호텔에서 버스터미널까지 태워준다. 오후 7시, 버스터미널에서 45인승 버스로 갈아탔다. 여행객들은 저마다 손에 커다란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버스에 올랐다.

좁고 어두운 길을 달리는 버스에서 운전기사 옆에 앉은 가이드는 아이슬란드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오로라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북극권에서는 오로라를 Northern Lights(북극광)이라고 부른다. 가이드는 연신 “우리가 지금 북극광을 보러 가지만 날씨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100% 장담할 수는 없다”며 기대치를 낮추려고 애썼다.

1시간 이상 달렸을까. 해안가 도시들을 지나 내륙으로 진입하면서 주변은 한층 더 캄캄해졌다. 대신 창 밖에 보이는 별들은 무서울 정도로 많아졌다. 이윽고 몇 채의 단층건물 앞 주차장에 버스가 멈췄다. 일행을 따라 건물 뒤 공터로 향하면서도 ‘여기서 도대체 어떻게 오로라를 본다는 거지?’의문이 들었다. 천문대에서 별 관찰하듯 높은 전망대를 상상했기 때문이다.

오로라는 내 기대와 다르더라

널찍한 공터에서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은 것은 쏟아지는 듯한 별 무리였다. 하지만 상상해오던 것처럼 하늘을 가로지르는 녹색 커튼 같은 오로라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낮은 산 위로 얇게 깔린 하얀 연기 줄기가 보였다. 마치 담배연기처럼 보였다. ‘저게 오로라라고?’기대와는 다르다는 불안이 엄습했지만 남들처럼 사진을 찍어보았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오로라의 모습. ISO 6400.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오로라의 모습. ISO 6400.

실제로 눈으로 봤을 때에는 푸르스름함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처음 계획했을 때부터 가졌던 기대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건 배신이야!’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진을 몇 장 찍다 실내로 들어왔다. 얼어붙는 듯한 추위 속에서 찍은 사진들은 죄다 깜깜했다. 약 5분 뒤 다시 나갔다. 하얀 연기가 아까보다는 조금 더 산 위로 올라온 것 같았다.

ISO 6400
ISO 6400

아까보다는 확실히 푸른색이 더 잘 보였다. 이번엔 카메라가 빛을 받아들이는 감도, ISO를 최대로 올려 찍어보기로 했다.

ISO 25600. 오로라와 북두칠성이 뚜렷하게 보인다.
ISO 25600. 오로라와 북두칠성이 뚜렷하게 보인다.

같은 장소에서 감도를 달리하며 연달아 찍은 오로라 사진을 비교해보니 ISO를 최대치로 높여 찍은 사진에서 오로라가 훨씬 더 잘 보였다. 푸른빛이 하늘로 번지는 것 같았다. 이 때부터 약 2시간에 걸쳐 실내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수 차례 반복하며 저 하얀 연기를 찍었다. 삼각대도 없고 DSLR이 아닌 디지털카메라였기 때문에 셔터스피드를 더 낮출 수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스마트폰 카메라로도 찍어봤지만 별조차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로라의 모양이 움직였다. 한줄기 연기 같던 오로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하늘로 번졌고, 시작점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변하기도 했다. 중간 부분의 오로라는 두 개의 층으로 갈라졌다가 커튼 모양으로 겹겹의 층이 지는 모습으로 변했다.

오로라의 시작점은 녹색보다 더 밝게 빛난다.
오로라의 시작점은 녹색보다 더 밝게 빛난다.

깊은 밤, 아이슬란드의 내륙 지역은 참으로 추웠다. 레이캬비크의 온도가 영하 1도 정도였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추위에 떨면서도 오로라가 하늘에서 춤추는 모습을 담느라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로라가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에 처음에 찾아왔던 큰 실망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소용돌이치는 듯한 오로라의 모습
소용돌이치는 듯한 오로라의 모습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오로라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오로라
커튼 같이 층이 지는 오로라의 모습
커튼 같이 층이 지는 오로라의 모습
두 개의 층이 진 오로라의 모습.
두 개의 층이 진 오로라의 모습.
속속 도착하는 다른 오로라 헌팅 버스.
속속 도착하는 다른 오로라 헌팅 버스.

오후 7시에 출발해 가장 먼저 오로라 헌팅 장소에 도착한 우리 일행 뒤로 8시, 9시에 출발한 팀들이 도착했다. 공터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실내에서도 커피와 간식을 사는 사람들로 붐볐다. 밤 11시가 가까워질 때에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오로라 앞을 떠났다.

이틀 후, 오로라를 한 번 더 만날 수 있었다. 1박2일로 남부해안 투어를 떠났을 때 묵은 호텔 앞에서다. 호텔은 바다 앞에 있었고, 나는 바다너머에서 시작돼 내 머리 위로 흘러가 반대편으로 사라진 오로라를 봤다.

남부해안에서 만난 모닥불이 피어 오르는 것 같은 오로라
남부해안에서 만난 모닥불이 피어 오르는 것 같은 오로라
호텔 주차장에서 본 오로라의 모습
호텔 주차장에서 본 오로라의 모습

오로라는 관측 장소와 시간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분명 선명한 녹색의 오로라도 실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본 오로라는 모두 살짝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하얀 연기가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시간에 따라 진해졌다가 옅어지고, 모양을 바꾸는 신비한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내가 평생 사진과 영상으로 접한 오로라의 모습이란 렌즈의 마술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두운 곳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의 눈보다, 장시간 노출과 감도가 높은 카메라의 렌즈가 흩뿌려진 빛의 입자를 귀신같이 잡아내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꽃청춘’에서 본 선명하고 환상적인 오로라 장면도 (별들의 이동 모습으로 보아) 모두 장시간 노출로 잡은 마법이었구나!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만난 시간은 실제보다 사진이 훨씬 아름다웠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오로라가 ‘지구에서 관측할 수 있는 가장 우주적인 현상’이라는 수식어가 이해됐다. 드넓은 우주에서 점 하나에 불과한, 지구 별 인간의 눈이 어떻게 태양에서 온 입자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이슬란드 여행은 인간이란 정말 작고 작은 존재란 사실을 새삼 실감케 해 주었다.

레이캬비크=글ㆍ사진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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