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버니 샌더스가 지극히 현실성 있는 공약만 내놓았다면 열기는 지금처럼 뜨겁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탐욕스런 집단이라고 해도 어쨌든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월 스트리트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적개심을 표출하고, 거친 산고를 겪은 오바마 케어보다 훨씬 강력한 전국민 단일의료보험을 주장하고, 부유층은 물론 중산층까지 증세하겠다는 그의 좌파적 공약은 실현 가능해 보이지도 않을 뿐 더러 결국은 중도노선으로 수렴하는 미국의 투표행태상 득표와도 꽤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는 비현실적이서 더 매력적이다. 번영과 풍요 뒤에 가려져 있던 거품의 실체를 목격한 2008년 리먼 쇼크 세대는 힐러리 클린턴에게선 도저히 들을 수 없는 얘기, 8년 전 버락 오바마에게서도 들을 수 없었던 얘기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샌더스로부터 희열과 통쾌함을 느끼는 듯하다. 만에 하나 샌더스가 클린턴처럼 말하고, 클린턴같이 현실적 정책만을 제시했다면, 그는 아이오와까지 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확실히 유권자들은 개별 공약보다는 샌더스라는 ‘정치상품’ 자체에 호감을 갖는 것 같다. 그는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지만 결코 체제위협적 인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중영합적 요소도 있지만, 포률리즘이라고 낙인 찍기엔 너무 논리적이다. 연방하원 7선에 상원까지 재선한 제도권 정치인이지만 기성정치와는 다른, ‘워싱턴 정치’에는 없는 원칙과 소신이 느껴진다. 샌더스 열풍이 뉴햄프셔와 슈퍼화요일을 넘어 계속 이어질 지는 불투명하다. 결국 본선티켓은 클린턴의 몫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샌더스 돌풍은 그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올해 미 대선의 최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총선을 앞둔 우리나라 야당에서 ‘샌더스 마케팅’을 시작하리란 건 충분히 예상했던 바다. 2일 아이오와 코커스가 끝나자마자,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샌더스 열풍이야말로 우리 당이 추구하는 경제민주화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란 취지의 발언을 했고,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샌더스 돌풍은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기대’라고 규정했다. 특히 안 대표는 본인의 지향점이 샌더스가 목표하는 지점과 같다는 걸 강조하면서 제스처까지 따라 하는, ‘한국의 샌더스’이미지 만들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정치니까, 또 선거니까 샌더스든 클린턴이든 얼마든지 차용할 수 있겠지만 유권자를 설득하려면 철학과 콘텐츠 정도는 설명해줘야 한다. 그런데 대체 어떤 점이 안 대표와 샌더스가 비슷하다는 것인지. 이해력 부족 탓인지는 몰라도 난 안 대표가 대권에 도전했던 2012년 이래 줄곧 말해왔던 새 정치가 어떤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국민의당 면면을 봐도, 친노ㆍ반노만 빼면 더민주당과 뭐가 다른지 구분하지 못하겠다. 기존 정당에서 이탈했고 해서, 또 원샷법 표결에 동참했다고 해서 그걸 새 정치이고 제3의 길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2007년 6월 무렵으로 기억된다. 프랑스대통령 선거에서 우파인 니콜라 사르코지가 당선되자 당시 한나라당 대선주자였던 이명박 후보는 일면식도 없던 그에게 축하전문을 보냈다. 사르코지를 ‘같은 보수의 기치와 실용주의 정책을 내걸고 있는 정신적 동지’라고 지칭하면서. 프랑스에선 아무리 우파라도 우리나라로 치면 중도 좌파쯤은 될 터인데도 마치 글로벌 보수 파티라도 벌이듯, 동지운운하며 편지까지 보낸 건 코메디 중의 코메디였다.
샌더스 열풍은 그가 공화 민주 양당 소속이 아니어서 생긴 것도 아니고, 좌파적이어서 형성된 것도 아니다. 현 미국의 정치상황과 유권자들의 의식변화, 그리고 샌더스의 생각, 행동, 살아온 길 모든 것이 결합된 결과다. 다른 정치인과 다르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선거가 끝나도 계속 그렇게 해야 열풍도 일어나는 법이다. 국내 정치인들에게 샌더스를 벤치마킹하라고 권하고는 싶지만, 깊은 고민도 성찰도 없이 이런 식으로 선거 마케팅용으로 채택하는 건 낯뜨거운 정치상술로 보일 뿐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오히려 헌 정치가 아닐는지. sc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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