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내 운명' 우연이 인생을 바꾼 별들

▲ 조던 스피스/사진=공식 페이스북

사소한 계기가 운명을 바꾼 골프 스타들이 많다.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23·미국)부터 라이벌 로리 매킬로이(27·북아일랜드), 최근 떠오르는 송영한(25·신한금융그룹)과 김효주(21·롯데), 리디아 고(19·뉴질랜드·한국명 고보경)까지 그들의 독특한 입문기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 수영장 간 늦잠꾸러기가..

독일계 이민자 후손인 스피스가 골프에 입문한 건 우연의 연속이다. 미국 골프전문매체 골프 위크에 따르면 미국대학농구 3부리그 선수출신인 어머니가 두 아들의 늦잠 자는 버릇을 고치고자 아침 일찍 시작하는 여름 수영캠프에 넣으면서다. 수영장에서 물살을 가르던 스피스는 문득 유리창 너머로 골프를 치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보게 된다. 잔뜩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다음 여름 땐 자기도 골프 공을 쳐보겠다고 졸랐다.

독학으로 골프를 시작한 소년은 이내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한다. 11살이던 해 텍사스에서 열린 주니어 골프 클래식에서 동년배들을 따돌리고 쉽게 챔피언에 오르더니 내친 김에 18살까지 경쟁하는 챔피언십 디비전에서 뛰고 싶다고 부모에게 통보한다.

이때 부모는 "네 나이 이제 12살"이라고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스피스는 당시를 "내 또래를 이기는 것 따위에는 흥미 없었다. 골프 치는 모두를 이기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승부욕에 불타던 스피스는 거짓말처럼 7학년(한국 중학교 2학년 해당)을 마친 뒤 맞은 여름 기필코 18살들을 꺾고 챔피언십 디비전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포스트 타이거 우즈(40·미국)로 통하며 거칠 것 없이 승승장구하는 스피스에게도 아픈 손가락이 있다. 올해 15살인 여동생 엘리는 선천성 자폐아로 태어나 지능이 5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장애 아동이다. 여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스피스는 "엘리는 내게 영감을 가져다 주는 존재"라며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여동생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골프의 그 어떤 것보다 더 참을성과 인내심을 가르쳐줬다"고 말했다. 어머니 역시 "엘리가 없었다면 우리 아이들(스피스의 남동생은 대학농구 선수)의 지금 모습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 주당 100시간의 고된 노동, 결실 맺다

매킬로이의 힘은 아버지다. 아버지는 기억조차 없던 시절부터 최고의 골프 스승이자 멘토였다.

아버지 게리는 지역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칵테일을 만들어주고 팁을 받아 근근이 살아가는 바텐더였다. 미국 지상파 NBC 스포츠에 따르면 프로골퍼를 동경한 아버지는 아들이 첫 걸음마를 뗄 무렵부터 손에 골프채를 쥐어주었다. 나름 실력을 갖췄던 아버지의 코치 하에 매킬로이가 18개월 때 드라이버로 40야드(37m)를 날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8살엔 첫 홀인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게리는 아들이 그립(쥐는 법)을 잘못 잡을 때면 따끔하게 혼냈고 매일 밤 클럽을 들고 아들과 함께 침대로 가 잠이 들었다. 북아일랜드 홀리우드 작은 마을의 낡은 공공 임대주택에서 살 만큼 무척 가난해 골프를 가르칠 형편이 아니었음에도 아버지는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매일 골프장을 드나들었다.

매킬로이의 남다른 재능이 인정받자 더 큰 선수로 성장시키기 위해 따로 레슨을 시켰다. 그 비용이 많이 들게 되면서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화장실 청소를 마다하지 않고 쓰리잡을 뛰며 4년간 주당 100시간(총 168시간)을 일했다. 어머니 역시 야간에 공장을 나가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이런 부모에 대해 매킬로이는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라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 송영한/사진=KPGA 제공

◇ 송영한과 김효주, 리디아 고도 '이색'

최근 스피스를 꺾으며 파란을 일으킨 송영한은 공군 조종사 출신의 아버지가 이용하던 부대 내 골프 연습장에서 7살 때 처음 골프를 접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장난 삼아 골프채를 휘둘렀던 그때를 "부대 관사 내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놀이는 많지 않았다. 아빠 따라서 골프 연습장에도 가곤 했는데 아무래도 좀 위험한 것 같아 장난감 채를 사줬더니 잘 가지고 놀았다"고 송영한의 모친은 떠올렸다.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2016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개막전 우승에 빛나는 김효주는 6살 때 처음 골프채를 쥐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간 강원도 원주시 집 근처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하고 싶은 운동을 고르라고 해 즉흥적으로 택한 게 시작이었다.

김효주의 아버지는 "내가 골프를 몰랐던 게 오히려 약이 됐다"면서 "이런저런 간섭을 했다면 아마 반발심리가 생겨 다른 길로 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언급했다.

리디아 고는 5살 때 가족과 호주 이모집을 방문했다가 어린이용 7번 아이언과 퍼터를 선물 받고 골프에 빠져든 케이스다. 어린이용 골프채를 갖고 노는 모습을 본 동네 골프연습장 코치의 조언에 따라 골프 여건이 좋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뉴질랜드에서 리디아 고는 물 만난 고기처럼 천재성을 유감없이 뽐냈다.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지 48일 만에 첫 라운드에서 130타를 쳤다고 전해진다. 성장을 거듭한 그는 현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다.

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