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계기가 운명을 바꾼 골프 스타들이 많다. 미국프로골프(PGA)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23ㆍ미국)부터 로리 매킬로이(27ㆍ북아일랜드), 최근 떠오르는 송영한(25ㆍ신한금융그룹)과 김효주(21ㆍ롯데)까지 그들의 성공기 뒤에는 남다른 골프 입문기가 숨어 있다.
수영장 간 늦잠꾸러기
미국 골프전문매체 골프위크에 따르면 미국대학농구 3부리그 선수 출신인 스피스의 어머니는 어린 두 아들의 늦잠 자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아침 일찍 시작하는 여름 수영캠프에 참가시켰다. 수영장에서 물살을 가르던 스피스는 문득 유리창 너머로 골프를 치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보게 된다.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자기도 다음 여름에는 골프 공을 쳐보겠다고 졸랐다.
독학으로 골프를 시작한 소년은 이내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한다. 열 한살이던 해 텍사스에서 열린 주니어 골프 클래식에서 동년배들을 따돌리고 챔피언에 오르더니 내친 김에 18세까지 경쟁하는 챔피언십 디비전에서 뛰고 싶다고 부모에게 ‘통보’한다. 이때 부모는 “네 나이는 이제 열 두살”이라고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훗날 스피스는 “내 또래를 이기는 것 따위에는 흥미 없었다. 골프를 치는 모두를 이기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승부욕에 불타던 스피스는 거짓말처럼 7학년(한국 중학교 2학년)을 마친 뒤 맞은 여름 기필코 18세 형들을 꺾고 챔피언십 디비전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주당 100시간의 고된 노동, 결실 맺다
매킬로이의 힘은 아버지다. 아버지 게리는 지역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칵테일을 만들어주고 팁을 받아 근근이 살아가는 바텐더였다. 미국 지상파 NBC 스포츠에 따르면 프로골퍼를 동경한 아버지는 아들이 첫 걸음마를 뗄 무렵부터 손에 골프채를 쥐어주었다. 나름 실력을 갖췄던 아버지의 코치 하에 매킬로이가 18개월 때 드라이버로 40야드(37m)를 날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여덟 살엔 첫 홀인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게리는 아들이 그립(쥐는 법)을 잘못 잡을 때면 따끔하게 혼냈고 매일 밤 클럽을 들고 아들과 함께 침대로 가 잠이 들었다. 북아일랜드 홀리우드 작은 마을의 낡은 공공 임대주택에서 살 만큼 가난해 골프를 가르칠 형편이 아니었음에도 아버지는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매일 골프장을 드나들었다.
매킬로이가 남다른 재능을 인정받자 더 큰 선수로 성장시키기 위해 따로 레슨을 시켰다. 그 비용이 많이 들게 되면서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화장실 청소를 마다하지 않고 ‘스리잡’을 뛰며 4년간 한 주간 168시간 중 무려 100시간을 일했다. 하루 14시간의 중노동이었다. 어머니 역시 야간에 공장을 나가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이런 부모에 대해 매킬로이는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라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 따라 간 골프 연습장
최근 스피스를 꺾으며 파란을 일으킨 송영한은 공군 조종사 출신의 아버지가 이용하던 부대 내 골프 연습장에서 일곱 살 때 처음 골프를 접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장난 삼아 골프채를 휘둘렀던 그때를 “부대 관사 내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놀이는 많지 않았다. 아빠를 따라 골프 연습장에도 가곤 했는데 아무래도 좀 위험한 것 같아 장난감 채를 사줬더니 잘 갖고 놀았다”고 떠올렸다.
2016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개막전 우승에 빛나는 김효주는 여섯 살 때 처음 골프채를 쥐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간 강원 원주시 집 근처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하고 싶은 운동을 고르라고 하자 즉흥적으로 택한 게 시작이었다. 김효주의 아버지는 “내가 골프를 몰랐던 게 오히려 약이 됐다”면서 “이런저런 간섭을 했다면 아마 반발심리가 생겨 다른 길로 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정재호기자 kemp@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