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비유컨대 ‘섬’이다. 외국으로 도피를 하려면 밀항을 해야지 육로로는 도망갈 방도가 없다. 분단 때문이다. 일제 강점과 연이은 외세 개입으로, 본래 섬이 아니었던 강토가 실질적으론 섬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우리 사유가, 상상이 또 포부가 섬처럼 고립되어선 안 됨은 당연할 터이다.
설이 코앞이다. 원숭이해가 진짜로 시작한다. 원숭이 하면 ‘서유기’의 손오공과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원숭이들이 생각난다. 주지하듯 ‘서유기’는 인도에서 불경을 구해 돌아온 현장법사의 구도 여행을 소설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손오공은 이 소설에서 삼장법사 일행을 이끌며 여행 목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주인공으로 나온다. 반면에 조삼모사의 원숭이들은 단순한 책략에 넘어가는 우둔하기 짝이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손오공의 활약은 가히 ‘역대급’이었다. 감언이설에 쉬이 속고 그럴싸한 겉모습에 날름 넘어가는 삼장법사 등과는 차원을 달리 했다. 그는 존재의 본질을 통찰했고 사태의 핵심을 꿰뚫었다. 게다가 천하무쌍의 무공과 절륜의 무기도 갖추었다. 옥황상제부터 석가여래, 태상노군에 이르는 최고의 신격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였다. 문무를 겸비한데다가 최상의 하드웨어와 절정의 인맥마저 갖춘, 인간이 빚어낸 완전체 자체였다.
반면에 조삼모사의 원숭이들은 못남 방면에서 가히 ‘역대급’이었다. 그들은 아침저녁으로 네 알씩 받던 도토리를 아침에 셋, 저녁에 넷을 받자 분노하였다. 그러다 주인 저공이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니까 환호했다. 이 고사를 전한 열자(列子)는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고 목적을 달성한 저공더러 지혜롭다고 칭송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지혜라기보다는 말장난에 불과했다. 그런 저급한 말장난에 원숭이들은 좋다 하며 농락당했을 뿐이다. 참으로 지질하기 그지없는 군상들이다.
이들 가운데 우리 인간이 원숭이해를 지정까지 하며 기리는 원숭이의 덕은 손오공의 그것일 것이다. 빼어난 인간이 지녔을 법한 재덕을 고루 갖춘 채 신적 능력마저 겸비한 존재, 기릴 만한 대상임에는 틀림없다. 주목할 점은 손오공 같은 캐릭터가 서역으로의 여행 곧 ‘서유(西遊)’라는 모티프와 결합되었다는 점이다. 그리도 뛰어난 손오공의 활동무대는 중원이 아닌 서역이었다. 왜 그랬을까? 당연히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동된 결과지만, 주로는 고대 중국인이 서역에 대해 품었던 관념 덕분이었다.
서역은 중국의 서쪽 바깥을 의미한다. 보다 구체적으론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일대를 가리킨다. 이 지역은 고대 중국인에겐 신비롭고도 기괴한 세계였다. 갖은 기화요초와 진귀한 보물이 그득한 이상향인 동시에 온갖 귀신과 요물이 득시글대는 지옥 같은 곳이기도 했다. 하여 이곳에 간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일로 여겨졌다. ‘서유’를 성공적으로 이끈 손오공이 절정의 공력을 지닌 초현실적 존재인 까닭이다.
문제는 서역이 대대로 중국의 발달을 일군 중요한 원천이었다는 점이다. 서역에서 유입된 문물과 제도는 중국이 일신하여 부강함을 창출하는 데 고갱이가 되곤 했다. 역대 중국 왕조 가운데 서역을 적극적으로 경영했던 한과 당, 청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크게 번영했던 데 비해, 서역 경영에 실패한 왕조는 거의 그렇지 못했음이 이를 방증해준다. 곧 ‘서유’로 대변되는 서역 경영은 현실에서 실현하기 힘들면 상상으로라도 이뤄내야 하는 과업이었다.
저 옛날만의 얘기가 아니다. 사회주의 신중국은 6ㆍ25전쟁이 한창일 때 서역 경영의 교두보인 위구르와 티베트를 무력으로 복속시켰다. 21세기에 들어 국력이 ‘G2’급으로 급성장하자 ‘서부 대개발’이란 야심 찬 계획을 들고 나왔다. 표면적으론 낙후된 중국 서북부 지역을 개발함으로써 지역 간 경제적, 문화적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비전을 내세웠지만, 근저에는 서역 경영을 위한 거점을 확고히 닦겠다는 욕망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시진핑 주석 시대가 전개되자, 서역 경영을 더욱 확대한 ‘일대일로(一帶一路)’란 표어가 제시됐다. 중국을 기점으로, 육로로는 서역 곧 중앙유라시아와 유럽을 잇는 ‘하나의 벨트’를, 해로로는 동남아와 서남아,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하나의 길’을 건설하겠다는 초대 규모의 국가전략이다. 과거 동서 교류의 양대 젖줄인 비단길과 바닷길을 유기적으로 통합함으로써, 지구촌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손오공을 만들어낸 욕망이 이젠 서역을 넘어 전 지구촌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반면에 우리는 갈수록 섬으로 고립되고 있다. 세계화를 외친 지 20여 년이 되었건만 ‘우리의 서유’를 실현하기는커녕 상상조차 않고 있다. 대신 갈수록 조삼모사 판이 되고 있다. 손오공 같은 원숭이는 부재하고, 저공과 그의 원숭이들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붉은 원숭이해인 듯싶다. 저공의 말장난에 놀아나는 동족을 보자니,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어 붉은 낯빛을 띠는 게 차라리 속이 편했나 보다.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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