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에서 책임론으로 말 바꾼 중국
낡은 북핵 패러다임으로는 해결 난망
우리 스스로 북한 리스크 떠안아야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과거 세 차례 북한 핵실험 국면에서의 쟁점은 북한을 혼내는 수준이었다. 북한 후견국인 중국조차 대북제재의 흐름에 동참한 것은 북한이 교란한 국제질서의 회복 명분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4차 핵실험 이후의 관계국의 논쟁은 북한에 대한 제재 방안과 수준이 아니라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도록 북한을 방치한 주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중국이 반대하는 강력한 대북제재도 이 논란을 먼저 해소하지 못하는 한 합의에 이르기 어려운 모양새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착각도 여기서 비롯한다. 북한이 한 술 더 떠 수소탄 실험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수 차례의 유엔 결의를 한껏 조롱하고 나섰으니 중국이 한미가 요구하는 강력한 제재에 더 적극적으로 힘을 보탤 것이라고 기대했을 법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담화에서 “어려울 때 손 잡아주는 것이 최상의 파트너”라고 한 것도 이런 기대감의 반영이다. 5자회담 파문도 마찬가지다. 북핵에 대한 중국의 바뀐 인식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으니, 박 대통령이 언급한 지 반나절도 안돼 중국이 이를 공식 반박하는 이례적 상황을 예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북핵 문제가 터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전승절 이후 마냥 들떴던 ‘성공적 대중 외교’라는 미몽에서 아직껏 헤매고 있을 게 뻔하다.
중국이 왜 이 시점에서 북핵 책임론을 들고 나왔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미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이 외교부장은 “제재가 목적이 아니다”라며 “중국은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고 했다. 관영매체인 환구시보는 중국의 대북제재 문제에서 “한국은 너무 제멋대로여서는 안 된다”는 자극적 수사까지 불사했다. 중국이 공세적으로 돌변한 것은 북한 제재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북핵 정국에서 수세를 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 반전 카드가 ‘책임론’이다. 그렇다면 의문은 또 생긴다. 중국이 ‘북한 핵 도발→국제사회 제재→중국 동참 압박’이라는 구도의 근본 변화를 시도하는 이유다.
4차 핵실험 이후 미국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ㆍTHAAD)의 한반도 배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배치 검토” 발언 이후 한미 양국의 움직임도 빨라져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가 기정사실화해 가는 분위기다. 남중국해에서도 미국이 공세는 두드러진다. 난샤군도(南沙群島ㆍ스프래틀리 제도)에 이어 중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시샤군도(西沙群島ㆍ파라셀 군도) 영해까지 진입했다. 대만에는 대만독립을 정강으로 하는 민진당 정권 수립에 맞춰 4년여 만에 대규모 무기판매를 결정했다. 지난달에는 필리핀의 8개 군사기지를 확보해 24년 만에 미군이 다시 필리핀에 복귀하는 길을 열었다. 착착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대 중국 봉쇄가 한반도에서는 북핵을 명분으로 한 사드 배치로 이어지고 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중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북핵 제재 프레임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4차 핵실험이 불러온 동북아 정세의 가장 큰 변화는 ‘북핵의 변두리화’다. 차이나 패러독스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 충돌하면서 초래한 결과다. 북핵이 비핵화 논제에서 미중의 패권다툼 수단으로 변질된 상황에서 과거처럼 한국 미국 중국이 대북 제재에 보조를 맞출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험난하지만 우리의 선택은 셋 중 하나다. 북한 중국 미국 중 어떤 리스크를 우선적으로 관리할 것이냐다. 현실적으로 우리에게는 중국과 미국 중 어느 한 쪽의 리스크를 떠안을 역량이 없다. 또 그래서도 안 된다. 효과적이면서 유일한 방안은 북한 리스크를 우리 스스로 짊어지는 것이다. 북한의 도발은 남북관계와도 밀접히 연관돼 있다. 김정은이 핵실험을 결정한 때는 지난해 말 남북 당국회담이 실패로 끝난 직후다. 식상하지만 남북 교류와 협력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은 그것 말고는 북한을 움직일 지렛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미국, 중국 리스크를 원천적으로 없애는 길이기도 하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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