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천에 ‘朴대통령 세월호 7시간’ 묻자 “딜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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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응천에 ‘朴대통령 세월호 7시간’ 묻자 “딜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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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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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민주당에 입당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비서관이 3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카페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조응천(54)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3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더불어민주당 입당이 가져온 파장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자신이 다뤘던 정보나 과거 자신의 역할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관련기사▶ “청와대 X파일? 설마 있다고 해도…”)

다음은 일문일답.

-한 인터뷰에서 본인의 처지를 영화 ‘내부자들’에서 손목이 잘린 이병헌(안상구 역)에 비유하고 나서 갑자기 이병헌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입당 후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

“(고개는 끄덕끄덕) 솔직히 직접 볼 시간도 없어 지금 반응이 뜨겁다고 했는데 잘 모른다. 다만 집에서 아내가 켜놓은 텔레비전에서 나보고 나쁜 놈이라고만 해서 끄라고 했다.”

-당에서 영입한 외부 인재 20명 중 가장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지.

“내가 살아온 길, 경력이라든가 나를 규정지을 수 있는 객관적 요소들이 그 동안 더불어민주당 혹은 전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미지와는 대척점에 있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거기에다가 내가 상당히 굴곡진 인생을 살아왔다. 또 최근에는 식당까지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범인(凡人)이 보기에는 ‘참 삶을 험하게 산다’ ‘여러 가지로 산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 아닐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야당 지지자들이 대부분 (입당을) 환영하고 지지하더라.

“(안 좋게 말하는 분들도) 몇 분 있다, 그래서 귀담아 듣겠다고 했다. 사실 식당을 하게 된 것도 좀 더 낮은 자세로 싫은 얘기, 또 평소에 못 듣던 얘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런 얘기(안 좋은 얘기)를 듣는 건 익숙하고 크게 개의치 않는다.”

-더민주에 입당하기까지 가장 마음에 걸렸던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아내 얘기를 하던 도중 감정이 북받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 아내. 시집 잘 못 와 가지고 뭔 고생인가. 재작년 12월 그 사건(청와대 문서유출 사건) 때 언론에서, 나를 굉장히 잘 아는 것처럼 ‘그 사람 원래 좀 과시욕이 심하다’라고 예단하고 단정하고 몰아가고. 그 때는 특히나 검찰이라는 국가권력이 모든 힘을 다 써가지고 날 향해 돌진을 하던 때였다. TV를 켜면 내가 나오고, 아내가 생각하기에 20년 같이 살아온 자기 남편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언론에서) 묘사를 하고 단정을 하고 몰아가는 것을 보고 너무 두려워하더라. 처음엔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화를 내다가 나중엔 두려워하더라.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그 때 실감했다.”

-정치를 한다고 하니 아내가 뭐라고 했나.

“이혼하자고까지 했다. 식당을 개업 할 때도 사실 어디 가서 아쉬운 얘기 한 번 해본 적 없는 여자가 접객을 하는 게 쉬웠겠나. 남편이 하고 싶다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줬다. 그런데 (정치를 한다고 하니) ‘지금 (식당) 잘 하고 있으면 됐지, 왜 차선을 급 변경 하려고 하나. 보나마나 언론에서 당신 물고 뜯고 씹고 즐기고 할 텐데 왜 또 나에게 그런 고통을 주려 하나. 감내할 자신이 없다’고 (아내가) 말하더라. 그리고 ‘아주 멀쩡하던 사람도 거기(정치권)만 가면 이상해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데 왜 그런 부류의 사람을 하려고 하나’고도 했다. 사실 뒤의 것은 설득을 할 수 있는데 앞의 것은 제가 아무리 제 아내라고 해도 (설득이) 어려웠다.”

-입당을 결심한 이유로 야당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야당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변하고 있다고 보나.

“과거 (야당 국회의원들은) 정권 획득이라는 목표를 잊은 채 당 내 헤게모니를 둘러싼 그들만의 리그에만 관심을 쏟는 것 같았다. 장래 희망이 야당 국회의원인 것 같아 보이더라. 물론 야당 국회의원 하면 편하겠지. 그런데 정당의 정의가 안에서 싸워 살아남아 (국회의원) 배지를 단 사람 모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결사체로 모여 국민들을 설득하고 결국 선거로 정권 획득하는 것이 정당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득권을 놓아야 한다.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면서도 야당 의원들은 국민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서로 ‘너 때문에 우리가 안 되는 거야’ ‘나 빼고 너희들만 바뀌면 돼’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전 대표는 나부터 바뀔 테니 도와달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했고 실제 바뀌고 또 바뀌게 하더라. 진정성이 보였고 감동으로 다가왔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합류도 입당을 결심하는 데 영향을 미쳤나.

“개인적으로 김 위원장을 직접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 모신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대단히 놀랐다. (문 대표가) 김 위원장에게 권한을 다 주는 것도 놀라웠고 또 실제 (김 위원장이) 전권을 행사하는데 따르는 것 보고 또 놀랐다.”

-선거 70일 전 전격적으로 새누리당의 빨간색이 아닌 더민주의 파란색 점퍼를 입게 됐는데.

“만약 (문재인 전 대표가) 나에게 이런 것을 줄 테니 와서 도와달라고 했으면 거절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나 좀 도와달라, 우리 잘 할 수 있게 도와달라, 그냥 도와달라’며 ‘좀 살려달라, 도와달라’ 그러는데, 계속 거절하기는 정말 난감했다.”

-청와대와 관련한 이른바 ‘X파일’을 몇 박스 들고 있을 것이라고들 한다.

“재작년 12월 (검찰에) 압수수색을 당했다. 내 이메일부터 휴대폰 통화내역, 카카오톡, 은행계좌 등 모든 개인 정보가 털렸다. 그 때 그런 게 있었으면 (1심에서) 무죄를 받았겠나. 처음 문건이 유출돼 한 언론에 보도되니 어떻게 (문건이) 거기로 갔는지가 관심사였다. 난 관여한 바도 없고 참고인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검찰 조사에서) 피의자가 됐다. 목적지가 박지만 EG 회장 쪽으로 바뀌었더라. 그 쪽도 준 적이 없다. 어쨌든, 재판에서 수도 없이 나온 얘기지만 청와대에서 나올 때 (문서는) 전부 다 파쇄를 하고, USB와 컴퓨터는 포맷을 하는 게 매뉴얼에 있다. 나 역시 슬리퍼, 치약, 칫솔 하나도 아무 것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중요한 자리에 있었던 만큼 정부ㆍ여당에서는 ‘정보’를 정치적 무기로 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스스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만약에 ‘내가 억울해요’라고 하려면 영장 청구를 했을 때 해야 했다. 내가 구치소에 갈 일이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구치소에 갈 확률이 높은 상황에 가면 대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한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 내가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이었다면 ‘이런 것 깐다’고 (검찰과) 딜(거래)을 하거나, 아니면 잘 아는 기자나 야당에 주고 영장이 발부되면 터트려 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 심정은 ‘그래 죽여라, 죽으라면 죽겠다. 내가 죽어서라도 이 정부 나아지고 대한민국 행복할 수 있다면 죽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당시 언론사에서 말하는 대로 다 방송에 실어줄 테니 제발 나오라 했는데도 한 군데도 안 나갔다. 끝까지 거부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들은 자기 같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더민주가 그런 조건을 걸었다면 굉장히 마음 편하게 거절했을 것이다.”

-‘폭로용 인재영입’이란 일각의 지적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에 참여하는 대의명분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결국은 여야든 정부든 국민민복이란 같은 목적이 있다. 정부ㆍ여당이 100% 잘할 순 없으나 전반적으로 잘한다면 야당은 체크하면 된다. 체크 앤 밸런스가 야당에게 있는데, 그 동안 당 내 헤게모니에 몰각돼 정부가 이상한 짓을 해도 야당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지적할 능력도 없었다. 이 정부가 역대 급 야당 복을 가졌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야당 쪽은 정말 ‘쌀 버러지’라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나 당이) 바뀐 것을 보고, 또 도와달라며 저같이 삶의 궤적이 완전히 다른 사람의 목소리와 시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봤다.”

-당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나.

“자강불식(自强不息)이라는 말이 있다. 쉼 없이 끝없이 자기 강화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야당은 자강불식이 필요한 상태다. 문 대표는 기존 야당 사람과는 다른 시각과 생각, 삶의 궤적을 가진 사람이 야당의 문제점을 찾고 고칠 수 있게 ‘이건 옳지 않다’ 목소리를 낼 사람이 필요하다. 야당 속의 메기가 되겠다. 미꾸라지들을 자극해서 생기가 돌게 하고 물도 맑게 하는 메기처럼 야당이라는 수조 속에 아주 이질적인 어종이 들어와 다른 고기들이 넋 놓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활발하게 움직이게 할 자극제가 될 것이다.”

-야당지지자들 정부ㆍ여당을 향한 싸움닭 역할도 기대하는데.

“더민주에서 나한테 그런 것 기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런 것을 얘기 했다면 단번에 앞으로 오지 말라, 오셔도 집에 갈랍니다 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런 낌새 보이면 ‘아니오(NO)’라고 할 것이고 그럼에도 계속 요구한다면 (당을) 나갈 거다.”

-정치입문을 선언하며 사정의 칼날이 다시 향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아내가 걱정했던 부분도 바로 그것이다. 이미 지난 사건 때 그렇게 힘들었는데 또 다시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설마 그렇게 할지 모르겠지만 한다고 해도 나올 건 없다. 나는 주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담배를 많이 피운다는 것 외에는 비난 받을 일이 없다.”

-2일 입당 기자회견에서 ‘나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또 생기지 않도록 하자는 문 전 대표의 말에 마음이 돌아섰다’고 밝혔다.

“거기서 ‘나’라는 것이 ‘조응천’이 아니라 국민들 개개인의 모든 아픔을 가리킨 거다. 다들 어디에 하소연하고 싶고 너무 힘들다는 부분들이 다들 있을 것이다. 거기서 ‘나’가 조응천은 아니다.”

-‘청와대 문서 유출 사건’ 당시 검찰 수사 등을 비롯해 자신에 대한 압박이 억울하지 않았나.

“내가 검사 시절이나 국정원 특보 때도 늘 빳빳한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아내가 오죽하면 그 성격 좀 고치라고 했을 정도다.”

-청와대에서 나온 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시 7시간 동선’에 대해 아는 바가 있나.

“세월호 참사 전날인 2014년 4월 15일, 위로부터 ‘부하 직원에게 얘기하지 말고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보통 오전 7시 전에는 집을 나서 출근을 하는데 8시 정도 되니 아내가 놀라서 날 깨웠다. 그래서 ‘하루 휴가 냈다’고 말했는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으니 아내가 무슨 일 있냐고 하는데 설명을 제대로 못하겠더라. 아내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아 할 말이 없어 텔레비전을 켰는데 마침 세월호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처음에는 전원 구조라는 보도가 있지 않았나, 그래서 다행이라며 화제를 돌리는 데만 급급했다. 결국 점심 약속 만들어 집에서 도망가듯 나갔다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이상한 숫자(사망자 수)가 나왔다. 당혹스러웠다.”

-그날 박 대통령의 구체적 행적은 몰라도 내부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아니 추측은 가능하지 않나.

(손가락으로 X표를 그리며) “딜리트(deleteㆍ삭제).”

-문재인 전 대표는 과거 지난 대선 때는 상대 경쟁 후보였는데. 당시 몰랐지만 이번에 만나면서 새로 알게 된 사람 ‘문재인’의 장점은.

“그 때는 선하기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강한 의지까지 겸비했다.”

-문 대표가 대선후보로 다시 시작한다면 도울 것인가.

“난 제도와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문 대표를) 지켜보고 그에 대해 소상히 알아가게 돼 있다. 지켜보다 저런 사람 같으면 우리나라, 국민 위해 마땅히 (대통령을)하는 게 맞겠다는 판단이 들면 온 몸을 바쳐 돕겠다.”

-2일 ‘국민의당’이라는 제3당까지 생겼는데 그 쪽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제3당에서 내게 도와달란 말이 전혀 없었다. 또 내가 스스로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이 애초에 없었기 때문에 저 당에 가고 싶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안티(Anti)’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정치인 조응천에게 필요해 보인다.

“제가 그런 것까지 생각하는 주도 면밀한 사람은 아니다. 우선은 정에 약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더민주가) 잘 하려고 하는데 도와줘야겠고. 나는 안티가 아니라 내쳐진 것이지 안티를 해서 나올 능력은 없다. 어떻게든 잘해보고 싶었다.”

(☞ 인터뷰 영상 보기)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정재호기자 next88@hankookilbo.com

전혼잎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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