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ㆍ우울 성향 있는 지역 아동들
직접 요리하며 재미와 성취감 느껴
“취약계층 상대로 확대 운영할 것”
“소고기 400g이면 간장이 몇 큰 술 들어가야 할까요?”
“불고기 요리에 꼭 필요한 참기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 까요?”
3일 오후 3시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 위치한 한 아동전문요리교실. 강사가 조리대 앞에서 준비된 재료를 가리키며 질문을 던졌다. 어수선하던 아이들은 질문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강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고기 100g당 한 스푼이니까 간장은 4스푼이 들어가요”라거나 “참기름은 참깨로 만들어요”라는 대답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시범이 끝난 뒤에는 각자 자리로 돌아가 고사리 손으로 불고기용 고기에 양념을 버무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중구지역 초등학교에 다니는 4,5학년들로 저녁 밥상에 올라갈 버섯 불고기 요리를 직접 만드는 중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양념을 손수 계량해 골고루 섞는 동안 한 명도 조리대를 벗어나지 않고 신난 표정이었다.
김민서(11)양은 “그동안 주방이 낯설게만 느껴졌는데 이곳에서 요리를 하면서 음식과 요리의 재미를 알았다”면서 “요리를 완성하면 집에 가져가 먹을 수 있고, 가족들과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고 수줍게 웃었다.
이날 민서양 등이 함께한 수업은 중구가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대상으로 3년째 운영하는 청소년 정신건강 증진프로그램이다. 이곳에 온 아이들은 심각한 장애는 아니지만 산만하거나 우울한 성향을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이날 요리 강좌는 요리 ‘자체’보다 ‘힐링’에 중심을 뒀다.
단순히 요리 과정을 익히는 프로그램이 아닌 만큼 이날 수업을 위해 요리전문 강사와 아동청소년 심리 전문가, 지역아동센터 교사와 보건교사 등 유관기관의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댔다. 요리전문 강사가 영양식단에 맞게 짠 레시피로 실습을 진행하고, 교육이 끝난 뒤에는 아동심리 전문가가 정신 발달에 미친 결과를 분석, 아이들이 속한 지역아동센터에서 교사가 피드백해주는 식이다. 요리 수업을 이끈 박재남(45) 쿡플러스 원장은 “아이들의 개별적인 성향을 파악한 뒤 알맞은 식재료를 골라 요리하게 함으로서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직접 깨닫게 해 치유효과를 얻고 있다”면서 “오감을 자극해 먹고 보고 만들어보는 활동이 주라서 다른 프로그램보다 집중도가 높고, 아이들이 직접 앞치마를 입고 신중하게 참여하기 때문에 성취감도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을 경험한 학생들에게는 벌써 작은 변화가 생겼다. 지난해 쿠킹테라피에 참여한 학생 15명을 대상으로 행동정서검사를 한 결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위험군 아동 2명이 정상범주로 돌아왔고, 평균적으로 불안ㆍ우울증 척도를 평가하는 점수가 현저하게 감소됐다.
김애란 중구보건소 주무관은 “아이들이 느낌이나 생각을 다양한 식재료와 조리방법으로 표현하면서 스스로 불안과 긴장을 해소하는 것”이라면서 “매 수업마다 자신감과 집중력이 좋아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효과가 빠르다”고 전했다.
중구는 프로그램 효과가 검증된 만큼 올해 대상자를 확대해 여름방학 프로그램까지 3번에 걸쳐 운영할 계획이다. 올해 상반기부터는 취약계층 가정 아동의 보건ㆍ복지ㆍ교육을 전담하는 ‘드림스타트’ 사업에도 쿠킹테라피를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최창식 구청장은 “최근 맞벌이 가족과 결손가족이 증가하고 취약계층 아이들의 식생활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쿠킹테라피가 정서발달 향상에 큰 효과를 내고 있다”면서 “요리를 통해 올바른 식습관뿐 아니라 성취감까지 맛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확대해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손효숙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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