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국회의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의원들이 지역구 선심성 예산을 종이에 적어 예산결산 위원에게 은밀히 부탁하는 속칭 ‘쪽지예산’이 지역사회보다 이익집단에 주로 배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순형 전 의원 보좌관 출신인 배석주씨가 최근 한국외국어대 행정학과 박사학위 논문에서 밝혔다.
2012~2015회계년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심의 과정의 쪽지예산 사용내역을 분석한 배씨의 논문에 따르면 4년간 쪽지 예산 4조1,000억원 가운데 ▲사회기반시설 등 지역 예산에 6,870억원 ▲특수, 소수집단인 기관 예산에 1조2,938억원 ▲국가장학금 등 전국 예산에 2조 1,204억원이 각각 사용됐다. 또 야당보다는 여당 의원에 배정된 쪽지예산이 많고, 특히 영남권(5,478억원)에 편성된 쪽지예산은 수도권(2,521억원)의 두 배 이상이다.
특정 의원의 요구로 편성한 선심성 예산이 지역주민보다 특수ㆍ이익집단인 기관에 훨씬 많이 배정된다면 이만저만한 문제가 아니다. 쪽지예산 자체가 오랫동안 정부의 재정계획을 흔드는 주범으로 지목돼 왔지만, 최종 사용처의 심각한 왜곡까지 확인돼 그 폐해가 한결 분명해졌다. 의원들은 지역주민의 환영을 받을 수 있어 잠시 욕을 먹더라도 악습을 멈추지 않는다. 기획재정부가 쪽지예산을 미리 감안해 예산안을 편성한다는 소문까지 나도니, 이미 악순환의 바퀴가 힘차게 구르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정부가 제대로 눈길을 주지 못하는 지역의 기반시설을 보완한다는 등의 이점 때문에 필요악 정도로 여기던 그 동안의 인식을 크게 바꾸어 마땅하다.
배씨 논문을 통해 국민 세금이 특수이익집단의 호주머니에 무더기로 들어가고 있음이 확인된 이상 더는 묵과할 수 없다. 의원들이 특정 기관의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의원은 쪽지예산으로 정부예산을 받아 건네주고, 이익집단은 사실상이 집단 정치후원금으로 보답하는 음성적 고리마저 떠오른다. 논문이 밝힌 내용의 사실 여부를 엄밀히 검증해 예산 낭비와 불투명한 정치적 유착을 차단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 국회와 정부가 함께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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