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의 김연아, 야구의 박찬호, 역도의 장미란에 바둑 조훈현과 산악인 엄홍길까지. 불세출의 국민 스포츠 스타들로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이름들이다(바둑과 산악 역시 대한체육회 정식가맹단체로 등록돼 있기 때문에 스포츠로 분류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들과 동시대에 호흡을 하며 그들의 전성기를 지켜봤다는 점에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동설한 한파 속에 이들의 이름이 연일 매스컴을 뜨겁게 장식하고 있다. 새누리당에선 4월13일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이들에 대한 ‘긴급 영입설’ 마저 흘러 나온다. 국민 스포츠 스타라는 대중적인 지명도에 기대, 표심을 쉬이 살수 있으리란 기대감에서리라. 마침 리우 올림픽이 열리는 2016년이다. 안팎으로 스포츠와 스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깔려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여기에 2004년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로 ‘입신’한 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도 이름을 올린 문대성 의원(부산 사하갑)의 가벼운 처신이 오버랩 된다. 문 의원은 불과 한 달 전 자신의 입으로 직접 밝혔던 불출마의 변을 180도 뒤집는 현란한 변신을 선보였다. 흡사 자신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 당시와 같은 막판 뒤집기 언변이 아닐 수 없다. 문 의원은 최근 4ㆍ13총선에서 부산을 떠나 고향인 인천 남동구(남동갑)로 지역구를 옮겨 재출마하겠다고 밝혀 많은 체육인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하지만 문 의원은 지난해 연말 “저는 직업정치인도 정치꾼도 아닌 체육인”이라며 “체육인으로서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어 불출마를 선언한다”고 공언했다. 사실 문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보다 올림픽 챔피언으로서의 존재감이 더 컸다. 그 자신 불출마 회견을 통해 “지난 4년 동안 직접 목도한 현실정치는 거짓과 비겁함, 개인의 영달만이 난무하는 곳이었다”며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한 뒤 “스포츠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발언은 한낱 실언이 됐고, 박사학위 논문표절로 뒤집어쓴 ‘문도리코’라는 별명 마냥 또 다시 비아냥과 조롱의 대상이 됐다. 한 태권스타의 끝간 데 모를 추락을 지켜보는 안타까움보다 조변석개하는 처신에 헛웃음만 터져 나온다.
물론 개인의 정치적인 선택은 자유다. 스포츠 스타들이라고 ‘초야에 묻혀 지내라’라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탁구인 출신 이에리사 의원은 체육 행정인으로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태릉선수촌장으로 일할 때 대표선수들의 훈련비를 획기적으로 늘리는데 앞장섰고, 여의도 입성 후에는 체육 유공자법 제정과 국립체육박물관 예산 확보에 큰 힘을 보탰다.
그런 점에서 스포츠 스타들의 정치권 입문에는 순기능도 분명 존재한다. 특히 해당 분야에 대한 문제의식은 남다른 데가 있다. 그러나 문 의원의 사례에서 보듯 스타 체육인들의 정치권 입성을 순수 의지라고 보기는 어렵다. 거의 얼굴 마담용으로 ‘소비’되고, 정치력 영향력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화려한 조명 뒤에 숨은 민 낯이 고스란히 드러나 망신살이 뻗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들 스타들의 마음이 가볍게 움직일 것 같지는 않다. 김연아 측은 “금시초문”이라며 펄쩍 뛰고 있고, 박찬호와 장미란 역시 정치권 입문이 부담스럽다라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조훈현 9단은 아예 “마음의 결정이 나기까지 오래 걸릴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다. ‘제비’에 비유될 만큼 빠른 행마가 전매특허인 그로서는 이례적인 답변이다. 엄홍길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더 중요하다”며 완곡한 거절의사를 표시했다. 엄홍길은 휴먼재단을 설립해 히말라야 네팔에 등반도중 비명에 간 세르파들의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짓고 있다. 이만하면 여의도에서 줏대 없이 휩쓸리면서 욕먹는 것보다 훨씬 빛나고 가치 있는 일 아닌가. 몇 안 되는 전국구 스포츠 스타들을 그냥 제자리에서 지켜봐 주고 인정해주는 풍토가 아쉬운 요즘이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hc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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