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니 장그래가 무역 용어도 잘 알고, 영어도 잘 하고 마지막에는 액션까지 하더군요. 그래서 일부러 시즌 2 도입부에선 중소기업에 취직한 장그래에게 엎드려 김치 국물을 닦게 했습니다. ‘초라해서 못 견디겠다’는 대사도 넣었습니다. 드라마화나 영화화 같은 작업과는 별개로 내가 그리는 만화는 이러해야 한다는 걸, 제 나름대로는 선을 그어두고 싶었습니다.”
2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마련된 ‘미생 시즌 2’(위즈덤하우스) 출간 기자간담회의 윤태호 작가 목소리는 차분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결심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는 요즘 최고의 만화가다. ‘미생’ ‘이끼’ ‘내부자들’ 등 작품마다 화제를 낳았고 드라마화나 영화화로 이어졌다. 320만부가 팔려나간 ‘미생’은 게임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는 부담이기도 하다. 윤 작가는 “‘미생 1’ 때는 어떻게든 그리면 됐는데 ‘미생 2’는 만화만 보신 분, 만화와 드라마를 다 보신 분, 드라마만 보신 분, 그냥 소문만 듣고 오신 분 등 다양한 분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데 쉽지 않다”며 웃었다.
3, 4년 정도 다음 웹툰으로 연재한 뒤 책으로 나올 미생 시즌 2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원인터내셔널 사람들이 독립해 만든 중소기업 ‘온길 인터내셔널’에 취직한 장그래다. 회계 등 기업의 기초부터 다져나간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장그래와 원인터내셔널 동기 3명 안영이, 장백기, 한석율이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과정을 그린다. 여기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대비된다. 윤 작가는 “대기업은 보고서로 꾸미고 감추지만 중소기업은 보고서 쓸 필요 없이 맨 낯으로 서로를 대하는 공간”이라면서 “옷을 벗고 전투장에 나가는 격”이라고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등장인물들이 결혼 적령기에 다다른 만큼 이들의 결혼 이야기를 다룬다. 달달한 연애담도 들어가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윤 작가는 “연애 그 자체뿐 아니라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 우리 청춘들이 이야기를 더 많이 넣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즌 1의 화두가 ‘일’이었다면 시즌 2의 화두는 ‘중소기업의 생존 자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작가는 “개인적으로 땅에 발 딛고 있는 얘기들을 좋아한다”면서 “이런 이야기들이 내 삶도 보고 타인의 삶도 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앞으로 작품 계획도 설명했다. 위즈덤하우스와 손잡고 별도 출판사 바이브릿지를 만들어 100권짜리 교양만화 ‘오리진’ 시리즈를 내놓는다. 9월부터는 남극을 소재로 한 만화를 연재한다. 윤 작가는 “연재 때부터 음반,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영역을 염두에 두고 시작해보고 싶다”면서 “남극 소재 만화에서는 비밀리에 음악가도 섭외해뒀으니 뮤지컬 등으로 확장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사가현의 열기구와 그린란드를 소재로 한 만화도 구상 중이다.
이렇게 하고팠던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역시 미생이다. 윤 작가는 빙그레 웃었다. “글쎄요. ‘미생’은 제 이름을 바위에다 파놓은 작품 같달까요. 누군가 일부러 시멘트를 발라 메워버리지 않은 이상 남아 있게 된 그런 작품?”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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