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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기품 제주의 설경…신(新) 세한도

입력
2016.02.0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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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실체가 무엇이든 선비의 기품과 절개는 변함없어

얼마 전 제주에 많은 눈이 내리며 항공기가 결항돼 수많은 승객들이 고통을 겪었다. 공항에서 밤을 지샌 이들에게 제주의 겨울은 겉으로 드러난 날씨보다 더 큰 추위로 다가왔을 것이다.

제주의 겨울을 누구보다 춥게 여긴 사람을 꼽는다면 단연 추사 김정희를 떠올릴 수 있다. 1840년(헌종6년)부터 1848년까지 제주에 유배된 추사는 이곳에서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하는 한편 세한도(歲寒圖)를 통해 선비의 절개가 무엇인지를 일깨웠다.

세한도는 허름한 집 한 채를 중심으로 좌우에 2그루씩 모두 네 그루의 나무가 서 있는, 문인화의 정수로 꼽히는 그림이다. 논어 자한(子罕)편에 나오는 ‘추운 겨울이 돼서야 잣나무와 소나무가 푸름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세한도에서 송백(松柏)이라 표현한 나무가 무엇이냐에 대해 종종 논란이 일었다. 흔히 송백을 소나무와 측백나무 혹은 잣나무로 소개하고 있는데, 추사가 살던 당시 제주에는 소나무와 곰솔은 많지만, 측백나무와 잣나무는 없었기 때문이다. 잣나무는 추운 지방에 자라기에 요즘도 제주도에선 찾기 어렵고, 측백나무는 일제 강점기에 도입된 이후 감귤 과수원의 방풍림으로 많이 심어졌다.

송백뿐만 아니라 그림 속의 집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예전 제주도의 집들과는 형태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집들은 관아시설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완만한 곡선의 초가집이었다. 둥근 형태의 문도 제주에서는 볼 수가 없다. 세한도가 상상 속의 이미지를 그린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세한도가 제주도의 실물 풍경화라고 할 경우 송백은 사전적 의미로만 언급된 것이고, 실제는 소나무와 곰솔일 것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소나무가 아니라도 제주에는 사시사철 푸름을 간직한 나무가 많다. 특히 서귀포의 천지연폭포나 천제연폭포, 안덕계곡 일대는 한겨울에도 각종 상록수림으로 온통 푸르다. 감귤나무 또한 겨울철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유독 소나무에 집착하는 이유는 선비들의 곧은 정신세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대나무, 매화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로 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침엽상록수로 제주에는 소나무와 곰솔이 많다. 제주시 산천단의 곰솔처럼 우람한 기상을 자랑하는, 문화재로 지정된 나무도 상당수 있고, 추사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대정향교 안에도 기품을 자랑하는 소나무가 서 있다. 세한도에 그려진 나무가 무엇이건 그 기품이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려움을 겪는 스승을 잊지 않고 챙긴 제자 이상적의 마음씀씀이가 그렇고, 이를 송백에 비유한 추사 또한 그렇다. 추운 겨울날 푸름을 간직한 수많은 나무들까지도.

강정효 (사)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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