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참상을 카메라 영상에 담아 가장 먼저 해외에 알린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 전 일본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씨가 별세했다. 향년 79세.
5ㆍ18 기념재단은 힌츠페터씨가 지난달 25일(현지시각) 독일 북부 라체부르크에서 숨졌다고 2일 밝혔다. 그는 2004년 5월 심장질환으로 쓰러진 이후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그는 병상에 있으면서 “내가 죽으면 광주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가족들에게 남겼다. 이에 따라 광주시는 그가 사망하면 국립 5ㆍ18민주묘지에 안장될 수 있도록 관련 조례를 개정한 상태다.
그러나 광주에 묻히고 싶어 했던 그의 소원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족들이 그를 가족묘에 안장하겠다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힌츠페터씨는 지난 2005년 광주를 방문했을 당시 자신을 가족묘에 묻고 싶어하는 가족들의 뜻에 따라 자신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담은 편지봉투를 5ㆍ18기념재단이 남기고 독일로 돌아갔다. 5ㆍ18기념재단과 광주시는 힌츠페터씨가 남긴 손톱과 머리카락을 5ㆍ18묘지 인근 망월동 구 묘역에 안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힌츠페터씨는 80년 5월 18, 19일 일본에서 광주로 들어가 목숨을 걸고 계엄군에 의한 참상 현장을 촬영한 후 이튿날 도교로 돌아가 이 영상을 독일 본사로 보냈다. 그가 촬영한 영상자료가 독일에서 방영돼 5ㆍ18 광주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23일 다시 광주를 찾은 그는 계엄군이 잠시 물러난 뒤 시민들 주도로 질서가 유지되는 모습도 찍어 알렸다. 그는 이후에도 꾸준히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취재해 왔으며 1986년 서울광화문 시위현장에서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기도 했다. 1995년 기자직에서 은퇴한 그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현장을 지켰던 치열한 기자정신이 국민의 양심을 깨워 이 땅의 민주화를 앞당겼다’는 공로로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5ㆍ18기념재단 관계자는 “광주시와 협의해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광주에서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