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골프’의 날이다. 아시아와 카리브해의 섬나라에서 잇따라 낭보가 쏟아졌다.
김효주(21ㆍ롯데)가 1일 바하마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개막전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싱가포르에선 무명의 송영한(25ㆍ신한금융그룹)이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23ㆍ미국)를 꺾고 정상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남녀가 한 날 세계 무대에서 동반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룬 한국 골프는 8월 열리는 리우 올림픽 메달 전망도 한층 밝혔다.
먼저 승전보를 전한 건 김효주였다. 김효주는 한국 시간 오전 6시40분 바하마 파라다이스의 오션 클럽 골프코스(파73ㆍ6,625야드)에서 끝난 LPGA투어 시즌 개막전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을 제패하며 세계최강 한국여자골프의 자존심을 지켰다. 김효주는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보기는 1개로 막고 버디 8개를 쓸어담아 7타를 줄이는 맹타를 휘둘렀다. 합계 18언더파 274타를 적어낸 김효주는 우승 상금 21만 달러와 함께 LPGA 투어 통산 3승을 기록했다. 스테이시 루이스(31ㆍ미국)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5타를 줄이며 김효주를 위협했지만 2타 뒤진 공동 2위(16언더파 276타)에 머물렀다.
2014년 여자골프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으로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김효주는 지난해 3월 파운더스컵 우승으로 실력을 증명했다. 그러나 시즌 후반으로 가면서 체력에 문제를 드러내 승수를 추가하지 못했고, 신인왕도 김세영(23ㆍ미래에셋)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와신상담 새 시즌을 준비한 김효주는 이번 우승으로 세계랭킹을 7위까지 끌어올려 한국 선수 4명에게 주는 올림픽 출전권 확보 전망에도 청신호를 켰다. 올해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골프에는 남녀부에 국가당 각 2명씩 출전할 수 있다. 다만 세계랭킹 15위 이내 선수가 4명이 넘는 나라는 4명까지 나갈 수 있다. 한국 여자골프는 1일 현재 세계랭킹 15위 내에 무려 8명이나 포함돼 있어 김효주를 포함해 박인비(2위), 김세영(5위), 유소연(6위)까지 4명이 출전할 가능성이 높다. 최종 출전 선수는 7월11일 랭킹으로 결정된다.
남자골프도 모처럼 기지개를 활짝 켰다. 프로 데뷔 후 우승이 없던 세계랭킹 204위의 송영한은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클럽 세라퐁 코스(파71ㆍ7,398야드)에서 재개된 아시아투어 싱가포르 오픈에서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를 따돌리고 정상에 오르는 ‘대형사고’를 쳤다. 12언더파 272타를 적어낸 송영한은 스피스(합계 11언더파 273타)를 1타 차로 따돌려 2013년 프로 데뷔 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아시아투어와 일본프로골투어(JGTO)가 공동 주최한 이 대회 우승 상금은 26만 달러다.
스피스는 지난해 마스터스와 US오픈 등 2차례 메이저대회를 포함해 미국프로골프투어(PGA) 투어 5승(통산 7승)을 올린 현역 최강이다. 특히 지난달 중순 하와이에서 열린 새해 첫 PGA투어 현대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도 정상에 올라 ‘스피스 천하’를 선포했지만 복병 송영한에게 발목을 잡힌 모양새다.
무엇보다 ‘태극 낭자’들에게 눌려 기를 펴지 못했던 남자골프에 너무나 반가운 우승 소식이다. 이번 대회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나 유럽프로골프투어에서 주최하는 특급대회는 아니었지만 스피스가 출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골프팬들의 관심을 모은 대회였다. 송영한은 악천후 때문에 경기 일정이 순연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안정된 경기력을 보이며 4라운드 중반까지 1위에 오르는 선전을 펼쳤다.
스피스도 세계랭킹 1위다운 저력을 발휘했다. 상위권에 숨죽이고 있던 스피스는 4라운드에서 컴퓨터 퍼팅을 앞세워 무서운 기세로 치고 나오면서 송영한을 위협했다. 전날 끝날 예정이었던 4라운드는 송영한이 16번홀, 스피스가 18번홀 그린에 있을 때 악천후로 연기됐다. 이때 스피스는 1.5m 거리의 버디 퍼트를 남기고 철수한 상황이었다. 송영한이 2타차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 홀에서 보기를 하고, 스피스가 버디를 한다면 순식간에 동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날 속개된 경기에서 스피스가 버디를 하고 경기를 먼저 끝냈고 송영한은 16번홀에서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결국 1타차 선두를 유지한 송영한은 남은 2개홀에서 타수를 끝까지 지켜 세계골프랭킹 1위 스피스를 따돌리는 파란을 일으켰다.
송영한은 경기후 “파퍼트 거리가 3.5m 정도 됐고 오르막이었는데 다행히 라인이 없었다”며 “어차피 이번 대회에는 톱10만 하자고 목표를 세웠다”며 “파퍼트를 하면서 ‘모르겠다. 운에 맡기자’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