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도적 이유로 대북봉쇄 거부
군사적 대결 심화는 파멸로 가는 길
북한 빠져나갈 수 없는 새 판 짜야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추가 제재 결의 협상이 지연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제동 탓이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번 대북 제재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적극적 참여와 역할이 필요하다고 압박하지만 중국은 요지부동이다. 대북 추가 제재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유지, 대화를 통한 해결이라는 기존 3원칙의 틀에서 달라진 게 없다. 안보리 추가제재의 핵심 쟁점인 북ㆍ중 무역이나 금융 거래가 포함되는 것에 대해 특히 난색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이 와중에 북한과의 경협 수준을 높이려고 한다.
북한은 대외무역의 90%를 중국에 의존하고, 원유 수입은 거의 100%, 부족 식량도 거의 대부분 중국을 통해 들여온다. 중국 내 식당 운영과 노동인력 파견을 통해 벌어들이는 외화도 막대하다. 중국이 맘 먹고 이를 제한하기 시작하면 북한이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 그런 특별한 대북 지렛대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존 케리 국무장관은 대북 원유수출 금지, 북한 광물수입 중단 및 민항기 운항 제한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북한 체제 안정을 핵심 국익으로 여기는 중국은 그럴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특이한 것은 중국이 이번에 대북 원조 중단이나 무역 제재 반대 근거의 하나로 인도적 이유를 내세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달 27일 중국 관영언론 매체의 하나인 환구시보가 케리 장관 방중에 맞춰 게재한 사설이 그 하나다. 요컨대 미국이 요구하는 제재조치는 북한 경제 전반에 대한 융단폭격이나 다름 없고, 이는 북한 주민들 삶에 심각한 피해를 주게 되고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이어서 수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중국이 북한주민들에 줄 피해를 우려해 대북 원유 공급 및 무역 중단과 같은 조치에 반대한다는 논리는 좀 생경하게 들리지만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만약 중국이 경제적으로 북한 옥죄기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고통 받을 대상은 김정은 체제의 지배집단이 아니라 일반 주민들이다. 최근 주민들의 생계 의존도가 높아진 장마당도 위축이 불가피해 주민 피해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과거 이라크나 이란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로 어린이, 노약자 등 수십만, 수백만 명의 무고한 주민이 기아와 의약품 부족으로 숨지고 고통 당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요즘 부쩍 애민을 강조한다는 김정은이 주민들의 고통에 가슴 아파해 핵 개발 정책을 포기하고 협상장으로 나온다면야 얘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세계 어떤 독재자들도 주민 고통 때문에 제재에 굴복한 예가 없다. 하물며 김정은 체제에 그런 기대를 하는 사람은 없을 터이다. 정작 고통을 받아야 할 대상에 제일 마지막으로 고통이 돌아간다는 게 그 동안 미국 등이 주도해온 경제제재의 역설이다.
그렇다고 군사적 압박이 좋은 해결책도 아니다. 요즘 한미간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는 동북아 안보에서 한ㆍ미ㆍ일 대 북ㆍ중ㆍ러 대결구도 심화를 초래해 북핵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할 게 뻔하다. 전술핵 재배치나 자체 핵보유는 현실성도 문제려니와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한반도에서 핵전쟁 발발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민족절멸을 원하지 않고서야 갈 수 없는 길이다. 군사대결 트랙으로 들어서면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평화와 남북공동번영 구상은 영영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중ㆍ러의 견제로 어정쩡하게 강도가 높아진 유엔안보리의 추가제재 결의가 채택된 뒤 우물우물하다가 또 어느 날 북한의 5차, 6차 핵실험을 속수무책 지켜보는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 결국 북한이 빠져나갈 수 없는 새로운 판을 짜는 데서 답을 찾아야 한다. 틀 밖에서 제재를 강화해본 결과가 바로 지금의 북핵 상황이다. 중국과 미국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면서 북한 문제를 자국 군사안보논리에 이용하려고 하면 길이 없다. 중국을 설득하고 미국을 끌어들여 새로운 판을 만들어가는 정부의 창조적 역량이 절실하다. 지금 사드가 급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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