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 스스로가 이제 각자의 취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유행을 좇기 보다 가치를 중시하고, 개성과 스타일을 드러낼 수 있는 것에 지갑을 연다. 기업들도 이런 변화를 의식해 '취향저격'에 집중하고 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규격화된 상품을 제안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 취향을 고려한 맞춤형 상품과 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취향'에서 비롯된 소비패턴이 '1인 맞춤 시대'를 열고 있다.
● 햄버거ㆍ커피ㆍ피자도 '맞춤'이 대세
서울 신촌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20대 여성 김씨는 요즘 햄버거 먹는 재미에 폭 빠졌다. 다양한 재료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햄버거 때문이다. 김씨는 "좋아하는 재료로 만든 햄버거라 입맛에 맞고 재료를 선택할 수 있으니 마치 요리하는 기분이 든다"며 "예전에는 1주일에 한 두 번 먹었는데 요즘은 횟수가 늘었다"고 말했다.
맥도날드는 지난해 8월 '시그니처버거'라는 새로운 플랫폼(운영체제)을 국내에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시그니처버거 메뉴에 포함된 '나만의 버거' 때문이다. 번ㆍ패티ㆍ치즈ㆍ야채ㆍ소스ㆍ토핑 등을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한 이른바 맞춤형 버거다. 선택 가능한 재료는 20여 종류나 된다.
맥도날드 신촌점에서 출시 당일 1,000개 이상 팔릴 정도로 시그니처버거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시그니처버거 인기가 높은 호주에서 출시 당일 500~600개가 팔린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맥도날드 측은 설명했다. 이 같은 호응에 힘입어 시그니처버거 도입 매장은 5개월여 만에 서울, 경기, 부산 등에 걸쳐 21개까지 늘어났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대표 메뉴인 '빅맥'에 비해 나만의 버거 가격이 약 20% 정도 비싸지만 취향을 중시하는 트렌드와 맞물려 판매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며 "앞으로 다양한 업종에서도 유사한 시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맥도날드를 비롯한 외식업계는 여러 방법으로 소비자 취향저격에 나서고 있다. 할리스커피는 지난해 커피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원두의 맛과 풍미를 소비자가 고를 수 있는 커피추출 이원화 방식을 도입해 눈길을 끌었다. 커피 주문 시 에스프레소와 리스트레또 등 2가지 커피추출방식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한 서비스다. 또 도미노피자는 기존 주문 앱과 달리 피자 도우, 토핑, 소스 등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마이키친 앱'을 선보여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피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미지를 통해 볼 수 있어 소비자들이 재미있어 한다는 것이 도미노피자 측 설명이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취향이 소비행태의 기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업계의 노력이 올해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다"고 내다봤다.
● 현지인 가이드ㆍ편집매장ㆍ옴부즈맨…취향저격 나선 기업들
여행업계에도 개인 취향을 고려한 트렌드가 뚜렷하게 반영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지 가이드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 마이리얼트립의 지난해 예약 건수는 전년 대비 26배나 증가했다. 이 회사는 주로 현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구성한 상품을 여행자에게 중개한다. 현지인이 직접 안내하니 일정은 대형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에 비해 훨씬 구체적이고 세분화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지인만 아는 맛집이나 숨은 명소를 찾아갈 수 있고, 현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체험도 가능하다. 예술여행, 역사여행 등 원하는 테마에 맞는 일정의 상품을 찾기도 대형 여행사에 비해 수월하다. 현재 이곳에서 선택 가능한 상품은 1,410개에 이르는데, 이 또한 2014년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대형 여행사의 여행상품도 자유일정과 패키지의 장점을 결합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5~6년 전부터 자유일정을 선호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최근 1~2년 들어 부쩍 강해졌다"며 "취향과 가치에 따라 일정을 구성하려는 여행자들이 그만큼 증가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취향에 따른 소비행태는 다양한 업종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하나의 상품을 취급하는 대리점 형태의 상점보다는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취급하는 편집매장이나 드럭스토어 등의 유통채널이 젊은층의 선택을 받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SNS 상에서 '편집매장'과 '드럭스토어'의 언급량은 2011년에 비해 각각 6배, 3배 이상 증가했다. 편의점이나 대형마트는 개인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자체 브랜드(PB) 상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건설업체들도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인테리어나 공간구조를 갖춘 오피스텔, 아파트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세계적 주류기업 디아지오의 프리미엄 흑맥주 브랜드 기네스는 지난해에 유명 연예인이나 스타가 중심이 되는 기존 광고와 달리 일반인들이 등장해 기네스만의 감각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하는 광고로 눈길을 끌었다. 디아지오코리아 관계자는 "기네스는 마니아층이 많은 브랜드인 만큼 특유의 맛과 향을 사랑하는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해 광고를 제작하게 됐다"며 "최근 개인의 취향과 가치, 경험을 고려한 광고들이 많이 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야심차게 론칭한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의 탄생도 남들 시선 보다 경험과 취향을 중시하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배경이 됐다. 현대차는 이를 '뉴 럭셔리'로 정의하고 이들이 추구하는 실용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H-옴브즈맨' 제도를 도입하며 소비자 취향 파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성환 기자 spam001@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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