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A자문관 제2순환도로 문건
탈취해 협상 전략 등 유출 우려
市, 자료요구권 줘놓고 보안은 허술
#지난달 중순 광주시청 7층 도로과 사무실에선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국책은행에서 파견돼 광주시 정책자문관으로 위촉된 A씨가 갑자기 직원이 보고 있던 제2순환도로 관련 문서를 빼앗아 달아난 것이다. A씨는 “돌려달라”는 직원의 요구도 무시하고 곧바로 4층 정책자문관실로 내려가 문을 걸어 잠갔다. A씨의 돌발행동에 시 관계자들은 당황했다. 시가 ‘혈세 먹는 하마’로 불리는 제2순환도로 운영 사업자인 맥쿼리인프라펀드와 통행료 수입 보전금을 둘러싼 최소운영수익보장률(MRG) 인하 협상을 벌이는 와중에 자칫 관련 내용이 유출돼 낭패를 겪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뒤 시는 A씨에게서 문서를 돌려받았지만 A씨가 문서에 담긴 내용 등을 외부로 유출했을 가능성도 있어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광주시와 제2순환도로 관련 자료 공유 문제 등을 놓고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진 A씨는 지난달 말 위촉 기간 끝나자 전남도 정책자문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 관계자는 “현재 광주시 감사위원회가 A씨 사건과 관련해 조사 중”이라며 “A씨의 문서 유출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은 세워뒀다”고 말했다.
A씨의 공문서 탈취사건이 알려지면서 광주시의 정책자문관제 운영 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시가 지난해 9월 윤장현 광주시장의 인척이자 비선 실세로 알려진 K씨를 정책자문관으로 위촉해 논란을 낳은 데 이어 이번엔 정책자문관을 통한 내부 자료 및 정보의 외부 유출 우려까지 불거지자 난감해 하고 있다.
시가 광주시장 훈령으로 정책자문관 운영규정을 마련한 건 2009년 4월. 민간 전문가의 전문지식 및 경험을 활용해 시정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현재 대회협력과 국제교류, 관광, 도시철도, 기획조정 등 14개 분야 14명의 정책자문관이 활동하고 있다.
문제는 시가 규정을 통해 민간인 신분인 자문관들에게 각 부서 및 소속기관에 대한 사실상 자료요구권을 부여하면서도 자료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한 보안시스템을 갖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문관이 얼마든지 정책 자문을 이유로 중요 자료를 건네 받아 빼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문관이 시정 현안과 관련한 중요 자료와 내부 정보의 외부 유출 통로로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경님 광주시의원은 “시가 의원들의 자료요구권에 대해서는 제공 자료 등을 관리하면서 민간인인 자문관들에 대해서는 어떤 안전장치도 마련하지 않았다”며 “중요 자료 유출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를 가릴 수 있도록 자료요구 관리대장을 두거나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자료를 받아볼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책자문관 운영에 대한 실효성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자문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세워져 있지 않은 데다, 자문 받은 내용이 시의 정책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에 대한 사후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시는 자문관들의 활동실적 보고서나 회의 참석 등을 근거로 자문료(수당)를 지급하고 있다. 시가 민선 6기 들어 자문관들에게 지급한 수당은 6,000여 만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시가 자문관 5명에 대해서는 매달 100만씩의 고정 수당을 지급하고 있어 수당 지급에 대한 기준과 원칙도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시는 지난해 말 수천만원을 들여 시청사 4층 휴게공간에 비상근직인 자문관들을 위한 별도 사무실(46㎡)까지 만들어줘 빈축을 사고 있다.
시 관계자는 “자문관을 통한 자료 유출을 막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등 정책자문관 도입 운영 취지에 맞게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경호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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