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20년 전 억울하게 사형 당한 한 청년과 관련,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경찰과 검찰은 물론 재판부와 법원장 등 무려 27명에 대해 징계 처분을 내렸습니다. 19년 만에 이태원 살인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관련 기관의 잘못이 드러났는데도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는 한국과 비교가 됩니다.
1일 신화통신 등 중국 매체들은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가 전날 후거지러투(呼格吉勒圖) 오심 사형 사건 책임자 27명에 대해 문책 결과를 공표했다며 그 내용을 전했습니다. 후거지러투 사건이란 1996년 당시 18세였던 후거지러투가 자신이 일하던 담배 공장 근처 공용 화장실에서 여성의 시신을 발견하고 신고했다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린 사건을 말합니다. 후거지러투는 신고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피해자의 성 폭행 살인범으로 지목되며 결국 사형까지 선고 받습니다. 살벌한 법 집행 분위기 속에서 수사, 기소, 사형 선고와 사형 집행은 불과 62일 만에 종결됐습니다. 가족들은 수사와 재판의 불공정성을 호소하고 나섰지만 20년 전 중국에서 이러한 가족의 호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거지러투가 사형된 지 9년이 지난 2005년 연쇄 살인 혐의로 체포된 자오즈훙(趙志紅)이 자신이 ‘후거지러투 사건’의 진범이라고 자백을 합니다.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2013년3월 취임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의법치국(依法治國)을 강조하며 분위기가 바뀝니다. 결국 네이멍구 고급인민법원은 2014년11월 이 사건의 재조사를 결정했고 그 다음달 후거지러투의 무죄를 선고합니다.
후거지러투의 부모는 18년이나 지각한 무죄 선고문을 받고 “아들아 결국 이런 날이 왔구나, 너는 이제 무죄다”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늦었지만 억울하게 숨진 아들의 한을 풀게 된 것이죠. 그러나 후거지러투의 부모와 중국 당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후거지러투의 무죄는 곧 당시 사법기관의 유죄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후거지러투의 부모는 당시 공안(경찰)들은 물론 법원까지 처벌해 줄 것을 탄원했습니다. 당국도 즉각 당시 사건을 담당한 공안, 검찰, 법원 관계자에 대한 전면적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1년여 걸친 조사 끝에 이날 이들에 대한 처분을 결정해 공표한 것입니다.
후거지러투 사건과 관련, 이날 가장 많은 이가 처벌된 곳은 공안(경찰)이었습니다. 당국은 당시 사건을 수사한 펑즈밍(馮志明) 후허하오터(呼和浩特)시 공안국 신청(新城)구 공안분국 부국장을 직무 관련 혐의로 사법 처리하는 등 모두 12명에 대해 처분을 내렸습니다. 펑 부국장을 제외하면 대부분 엄중 경고와 함께 과오를 행정 기록에 영원히 남기도록 하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눈길을 끄는 건 12명 중엔 일선 수사 담당자뿐 아니라 가장 윗선이라고 할 수 있는 후허하오터 공안국장도 포함됐다는 점입니다. 검찰도 당시 검사는 물론 후허하오터 검찰원(검찰청) 검사장 등 모두 7명이 처분을 받았습니다. 법원도 담당 판사와 함께 후허하오터 법원장까지 모두 8명이 징계를 받았습니다. 물론 대부분 징계의 내용은 ‘엄중 경고’였습니다. 사실 경징계라고 볼 수도 있지만 중국의 사법 현실을 감안하면 이 정도도 의미있는 성과라는 게 전문가들 평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19년 전 황망하게 숨진 한 죽음에 대한 잘못된 수사와 판결이 바로 잡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는 지난달 29일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 아더 존 패터슨(37)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는 1997년 4월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당시 23세의 대학생 조중필씨를 흉기로 9차례나 무자비하게 찔러 잔혹하게 살해하고서도 1999년 미국으로 도주했다 지난해 9월 16년 만에 송환된 뒤 재판정에 섰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정의가 구현된 것에 만족하고 이 사건을 잊기에는 그러나 뭔가 찝찝한 게 많습니다. 이 사건은 사실 수사 초기 검찰이 진범을 잘못 짚으면서 완전히 꼬인 측면이 큽니다. 진범이 도주할 수 있었던 것도 검찰이 출국 정지를 연장하지 않은 과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재판부가 좀 더 신경을 썼다면 진실이 밝혀지는 데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물론 신고자를 주범으로 몰아 사형까지 시킨 중국 사법 기관의 ‘범죄에 가까운 의도된 잘못’과 엇갈리는 증언 및 증거물 속에서 나름대로 진범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 우리 사법 기관의 ‘단순 실수’를 비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수사와 판결이 뒤집혔다 해서 당시 담당자들에게 잘못을 묻는 것은 법조인의 자부심과 사명감을 크게 훼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수사 기피와 책임지지 않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분위기가 더 만연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명백히 잘못된 수사와 판결에 아무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비극은 되풀이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답은 법에 있지 않는 지도 모릅니다. 후거지러투 재심 당시 자오젠핑 네이멍구 고급인민법원 부원장은 법원을 대표해 직접 피해자 부모를 찾아가 “이 사건이 우리에게 준 교훈은 너무나 가슴 아픈 것이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고개 숙여 사죄했습니다. 우린 과연 중국보다 나은 사법 체계를 갖췄다고 할 수 있을까요?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