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7년 만에 내달 정규직 출근
6명 복직 조건으로 거액 포기
“동지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함께 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죠”
29일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본사 정문. 날씨가 흐렸고 그의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았다. 다음달 1일 그는 사내하청직에서 해고된 지 무려 7년여 만에 정규직이 돼 저 문으로 출근할 참이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비정규직지회장 서맹섭(40)씨에게 물었다. “즐거워야 하는 일 아닌가요?” “담담하네요. 별 느낌이 없어요. 소송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사실 교섭으로 일이 풀릴 줄 몰랐습니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납니다.”
2009년 경영난에 빠진 쌍용차는 사내하청직 노동자 350명을 먼저 쫓아냈다. 2003년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해 근무 중이던 서씨도 그 중 하나였다. 그들의 자리를 정규직 노동자들이 채웠다. 그러나 그들도 구조조정 ‘칼날’을 피할 순 없었다. 이내 2,646명이 잘려 나갔다.
하청직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노조도 꾸렸다. 서씨 등 4명은 2011년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2013년 11월 1심에서 이겼다. 이후 2심을 준비하던 중 지난해 1월 해고자 복직 원칙이 발표되고 12월 쌍용차 노사가 해고자 전원 복직 노력 등을 담은 경영정상화에 합의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긴 노사 갈등이 일단락되는 데는 서씨 등 비정규직의 결단도 기여했다. 복직과 함께 그가 손에 쥘 체불임금은 물경 4억원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돈을 포기했다. 대신 개인 사정으로 복직을 포기한 조합원 1명을 제외한 6명 모두가 정규직으로 복직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회사 불법파견의 핵심 증거가 되는 근속 인정도 받아냈다.
“2008년 10월 비정규직지회를 만든 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돈에 집착하면 함께 갈 수 없었죠. 함께 가려고 함께 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어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아름답게 손잡고 들어가는 길을 찾고 싶어 내린 결정이었죠.”
복직을 앞둔 서씨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무더기 해고’ 직후였던 2009년 5월 70m 높이 평택공장 굴뚝에 함께 올랐던 당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을래 부지부장과 정비지회 김봉민 부지회장. 서로 잘 몰랐던 그들이 “정리해고 철회”를 외쳤던 86일, 고립된 공중에서 서로 의지하고 대화하고 이해했던 일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고 했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함께 싸워온 동지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네 아이 보듬고 어려운 생계 챙기며 늘 믿고 따라와준 집사람 덕분에도 계속 싸울 수 있어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해피 엔딩’은 미완이다. 복직을 희망하는 정규직 정리해고자 150명 가운데 다음달부터 서씨와 함께 일터로 돌아가는 이는 고작 12명. 멀었다. 합의안엔 해고자 복귀 시점과 규모가 명시돼 있지 않다. 2017년 상반기까지 단계적으로 복직시키는 데 사측이 ‘노력한다’는 애매한 표현이 전부다.
게다가 사내엔 아직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남아 있다. “현대자동차 등 현재 불법파견이 이뤄지는 사업장을 인정하기는커녕, 되레 파견을 늘리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파견이 늘면 차별도 커집니다. 같은 인간이 같은 현장에서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성과를 냈는데, 누군 1,000만원 받고 누군 500만원 받는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요.”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서씨는 지금도 싸우고 있는 비정규직들을 힘닿는 데까지 돕고 싶다고 했다. “이제 열심히 일해야죠. 정규직도 됐으니까요. 하지만 비정규직들을 위한 연대나 지원에 소홀하진 않을 생각이에요. 앞으론 가족도 더 살뜰히 챙기고 싶습니다.”
평택=권경성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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