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지카바이러스 확산 알고도 별다른 대책 안 내놔
WHO, 중남미 등 급속 확산에 국제 비상사태 선포 검토
소두증(小頭症)을 유발할 수 있는 지카 바이러스가 세계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하면서, 과거 신속 대응에 실패해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던 에볼라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적으로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가 400만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면서 내달 1일 긴급회의를 열고 비상사태를 선포할지를 논의키로 했다.
최근 2개월 동안 지카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발생한 국가는 27개국으로, 중남미 21개국, 유럽 3개국, 아프리카ㆍ아시아ㆍ태평양 지역 각 1개국으로 사실상 지구 모든 대륙으로 번지고 있다. 프랑스 보건당국은 28일(현지시간) 올해 초 해외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프랑스인 5명이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발표했다. 또 프랑스 본국은 아니지만 프랑스령 서인도 제도의 과들루프 섬과 카리브 해 생 마르탱 섬에서 각각 한 건의 감염 확진 사례가 보고됐다. 이날 캐나다에서도 3명의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가 나왔다. 이들 역시 해외 여행 중 바이러스에 노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세계 보건기구(WHO)는 28일 “향후 1년간 미주 대륙에서 400만명에 달하는 감염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한편, 내달 1일 긴급 회의를 소집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늑장 대응’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실제로 브라질에서 소두증 확산이 감지된 것은 지난해 7월이었지만 WHO는 그 동안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대니얼 루시 미국 조지타운대 박사는 미국의사협회저널(JAMA) 기고문에서 “(에볼라 사태 때와 같이) WHO는 여전히 지카 바이러스 사태에서 리더 역할을 맡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 뒤 “지금이라도 신속 대응에 나서라”라고 주문했다.
2013년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 당시에도 WHO는 늑장 대응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당시 WHO는 첫 희생자가 발생한 뒤 8개월이나 지난 2014년 8월에야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또 장비 부족, 운영 미숙, 내부 소통 부족 등의 문제를 노출하며 우왕좌왕 하는 사이 에볼라는 인근 국가로 급속히 확산됐다. 2013년 12월 이후 이볼라 발병 사례는 2만9,000건에 달하며 1만1,300여명이 숨졌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남미 여행 자제령을 내리는 등 자체적인 단속에 나서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OC)는 28일 브라질과, 볼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ㆍ카리브해 23개국을 여행 경고국으로 지정하고 여행 자제를 권고했다. 캐나다도 이날 지카 바이러스 확산 국가를 방문한 사람들의 헌혈을 한시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수혈로 지카 바이러스가 감열될 확률은 낮지만,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방역조치를 세웠다고 보건당국은 밝혔다. 또 임신 중이거나 임신을 계획하는 여성은 지카 바이러스 확산 지역에 여행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한편 지카 바이러스가 이집트숲모기나 흰줄숲모기 등 기존에 알려진 매개체가 아닌, 성관계에 의해 전염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OC) 앤 슈차트 부원장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성접촉에 의한 지카 바이러스 전염이 의심되는 사례가 2008년과 2013년 등 모두 2건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2008년에는 세네갈에서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미국인이 본국에 돌아온 뒤 아내도 같은 증상을 보였다. 두 사람은 두 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콜로라도에는 이집트숲모기 등 감염매개체가 없다. 2013년에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타이티 남성의 정액에서 지카 바이러스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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