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으로
이수지 지음
비룡소 발행ㆍ44쪽ㆍ1만5,000원
철학과 생물학이 겹치는 어디쯤에 ‘비인간 인격체’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 자격을 갖춘 생명체’라는 뜻인데, 인격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늠할까?
동물의 ‘인격’을 검증하는 실험이 ‘거울 실험’이다. 동물이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자신으로 인식하는지, 나아가 자신을 타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알아 보는 것이다. 현재까지 3종류의 동물만 이 실험을 통과했는데, 돌고래, 코끼리, 침팬지와 오랑우탄 등의 대형유인원류다. 최근에 유럽까치가 합류했다 한다. 이들은 내가 나인 줄 알고, 스스로를 대상화하는 능력-‘자의식’을 갖춘 것이다. 그래서 동물권익 단체들은 이들만이라도 우리에 가두지 말 것을 호소한다. 갇힌 자신을 자신이 볼 때, 얼마나 비참할 것인가.
인간은 생후 18개월 무렵이면 자의식이 형성된다고 한다. ‘거울 속으로’는 자의식을 갖춰가는 한 아이를 보여준다. 웅크리고 있던 아이가 문득 고개를 들어 거울 속의 자신을 본다. 처음에는 거울실험의 동물들처럼 그가 남인 줄 알고 흠칫 놀라지만, 이내 자신임을 깨닫고 거울놀이를 즐긴다. 내가 웃으면 거울 속의 나도 똑같이 웃고, 내가 춤추면 거울 속의 나도 똑같이 춤춘다. 나를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 사이에 괴리가 없는 것이다. 그 행복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인격은 거기서 머물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내가 보는 나는 나를 보는 나와 같지 않게 된다. 인간의 욕망은 멈추지 않으므로, ‘현존하는 나’와 ‘욕망하는 나’는 일치할 수 없다. 나는 그 괴리를 깨닫는다. 그래서 더 이상 만족스럽지 않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미숙한 아이는 거울을 밀어 버림으로써 괴리를 해소하려 한다. 거울은 깨지고 내가 보는 나는 사라진다. 아이는 다시 혼자다. 성숙한 인격이라면 어찌했을까?
다양한 인격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괴리를 해소하려 애쓰며 살아간다. 개중에는 아큐처럼 욕망을 속이는 이도 있고 돈키호테처럼 현존을 부정하는 이도 있다. 누구는 비굴하고 누구는 위태롭다. 굴절된 자의식이 자신을 파괴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들은 적어도 타자에게 위험하진 않다. ‘백설공주’의 왕비처럼 자신이 욕망하는 바를 갖춘 타자를 없앰으로써 현존과 욕망을 일치시키려는 경우도 있다. 이는 위험하다. 가장 위험한 것은 괴리를 느끼지조차 못하는 경우다. 이들은 아무런 반성 없이 무오류와 독선의 철탑에 갇혀 살아간다.
웅크린 아이는 다시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볼 것이다. 내가 없는 나의 공허를 알았기에 다시 거울을 깨뜨릴 일은 없으리라. 그러나 철탑 속의 인격 없는 영혼들은 어찌해야 좋을까
김장성 그림책 작가ㆍ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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