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를 낸 운전자가 사고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뺑소니’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위현석)는 20일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장모(70)씨 등 2명에게 전치 2주 부상을 입히고 장씨의 승용차를 파손한 혐의(도로교통법 위반 등)로 기소된 트럭운전사 장모(59)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8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장씨는 지난해 6월 서울 강서구 마곡철교 밑 올림픽대로에서 트럭을 운전하던 중 시속 70km 속도로 차선 변경을 시도하다 피해자 장씨가 운전하는 승용차와 부딪쳤다. 이 사고로 피해자 장씨와 동승자가 다쳤고 승용차 수리비도 900여 만원이 나왔다. 하지만 장씨는 사고 당시 트럭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현장을 떠났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장씨가 도주했다고 판단, “사고 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그를 기소했다.
그러나 재판부와 배심원단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도로교통법위반 혐의에 무죄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화물차 운전자 장씨가 사고 발생 사실을 인식했을지 모른다는 의심은 들지만 검찰이 제출한 증거는 이를 증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오히려 피해차량 블랙박스를 보면 장씨가 사고 직후 브레이크를 밟거나 속도를 줄인 정황이 없고, 평소 청력이 좋지 않은 장씨가 창문을 열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운전해 차량이 부딪히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뺑소니 유무를 가릴 때 사고 인지 여부의 중요성을 부각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정경일 변호사는 “그 동안 운전자가 사고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아 뺑소니의 경우 대부분 ‘미필적 고의’를 적용해 가해자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판결은 구체적인 정황 증거를 통해 고의성이 없다는 점을 증명한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윤주영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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