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원대 사기대출’로 수감된 박홍석(53) 모뉴엘 대표에게서 대출 한도를 3배 이상 늘려준 대가로 억대 금품을 챙긴 전직 은행 간부가 2심에서 중형을 선고 받았다. 박 대표에게 뒷돈 약 1억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가 2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받은 서모(56)씨에 이어 전직 한국수출입은행 간부가 연이어 항소심에서 높은 죗값을 치르게 됐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강영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기소된 이모(56) 전 한국수출입은행 부장에게 징역 5년의 실형과 벌금 1억5,000만원, 추징금 1억500만원을 선고했다고 28일 밝혔다. 1심에서 징역 1년 6월과 벌금 4,000만원을 선고 받았던 이씨의 형량이 대폭 높아진 것이다.
1심은 이씨가 2012년 12월 서울의 한 카페에서 박 대표에게서 50만원권 기프트카드 10장(총 500만원)을 받은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지만, 2013년 1월 받은 1억원은 뇌물이 아닌 빌린 돈으로 판단했다. 이씨는 박 대표의 돈을 모뉴엘 재무이사 강모씨의 계좌를 거쳐 받았는데, 이처럼 거래 흔적을 뻔히 남겼다는 것은 뇌물수수 속성상 이례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씨가 이자율도 안 적힌 차용증을 강씨에게 써 준 점도 근거로 들며 재판부는 1억원의 이자 950여만원만 뇌물로 인정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그런 차용증 작성은 뇌물수수를 차용관계로 가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이씨가 직무 관련 뇌물을 받은 게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금품을 받기 한 달 전 모뉴엘의 대출한도를 9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3배 이상 대폭 늘려주는 데 깊이 개입했고, 이후 강씨에게 박 대표의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이런 정황을 들어 “기대 이상의 대출 증액을 받은 박홍석이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는 걸 피고인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며, 친하지도 않은 둘이 정상적인 차용관계에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여겼다.
무리하게 아파트 두 채를 사들여 매달 400만원의 대출이자에 허덕이던 이씨가 2014년 9월 아파트 한 채를 팔고도 빚을 전혀 갚지 않다가 사건 수사가 시작된 그 해 말 원리금 1억500여만원을 공탁한 사정도 재판부의 강한 의심을 샀다. 아파트 매각 사실을 박 대표에게는 알리지 않고 다른 채권자의 빚을 갚았던 이씨의 행동에 비춰 처음부터 갚을 의사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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