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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것을 통해 세상을 쏘아보는 이야기들

입력
2016.01.2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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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소설집 '러브 레플리카'를 낸 윤이형 소설가 ©이천희
세 번째 소설집 '러브 레플리카'를 낸 윤이형 소설가 ©이천희

2014년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후보작에 윤이형 단편 ‘러브 레플리카’가 올라왔을 때 내용을 두고 기자와 편집자 간에 이견이 있었다. 거식증 환자 이연은 따뜻하고 배려심 깊고 윤리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는 여성 경을 만나 동경하는 마음을 품는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연의 거식증을 자신의 병인 양 말하는 경에게 이연은 이상함을 느끼고, 그가 자신의 상처인 것처럼 말해왔던 과거도 실은 남의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남의 어두움을 제 것으로 취하는, 이런 희한한 이야기. 그 ‘도벽’이 악의에서 온 것인지 반대로 지나친 공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의견이 분분할 수 밖에 없을 터다. 이 소설을 표제작으로 담은 윤이형의 단편집(문학동네)이 출간됐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작품 8편을 모은 것으로, 문지문학상을 받은 ‘루카’, 젊은작가상 수상작 ‘쿤의 여행’ 등이 수록됐다.

굳이 받은 상을 나열하지 않아도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2007) ‘큰 늑대 파랑’(2011)로 그는 이미 강한 인상을 남겼다. SF에 기반한 재기 있는 상상력, 다기한 해석을 열어두는 희한한 설정들, 그 핵심에서 빠진 적 없는 사회비판적 시선. 이번 소설집에 다른 점이 있다면 작가의 나이가 마흔이 됐다는 것, 그리고 다섯 살 난 아이를 기르는 엄마가 됐다는 것이다.

“육아에 집중하다 보니 아무래도 시야가 좁아지죠. 작가로선 좀 괴로운 일인데.(웃음) 전에는 거창한 얘기를 하고 싶어했다면 이번엔 감정에 많이 치중한 것 같아요.” 26일 한국일보에서 만난 작가는 한정된 삶의 반경에 대해 다소 자조적인 얘기를 꺼냈다.

그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대니’는 딸의 육아를 대신하는 노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미래를 배경으로 안드로이드 베이비시터 대니가 등장한다. 아이 똥냄새와 우유냄새 속에서 스스로 인간인지 기계인지를 묻는 할머니에게 ‘육아 기계’를 데려다 주는 별남은 여전히 ‘윤이형적(的)’이다. 아이를 돌보지 않으면 괴로워지는 대니의 존재는 모든 주부에게 그야말로 구원. 그러나 할머니에게 인간임을 상기시켜준 대니는 갑자기 “같이 살자”며 돈을 요구해 독자들을 다시 갑론을박의 장으로 내몬다.

“인간인데 인간이 아닌 것처럼 살고 있는 인간이 많아요. 사회가 육아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떠맡은 할머니들은 ‘숭고한 일이니까, 마땅히 할 일도 없으니까’란 이유로 당연히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어요. 하지만 그 분들도 인간이에요, 감정이 있어요.”

세상에 없는 것들을 통해 세상을 쏘아보는 그의 시선이 다음은 어디로 튈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작가의 말마따나 “이제 명백히 기성세대”가 된 그는 “사회를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부채감을 토로했다. “(제 나이가)소위 X세대죠. 소비상업주의의 단물을 실컷 마시고 자라 취향, 감각, 자기 정체성은 첨예할 정도로 발달한 반면 공동체에 대해선 할 말이 없어요. 내 뒤에 올 사람들이 최소한 죽어나가지 않게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이 갈수록 무거워져요.”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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