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4일 두 명의 키프로스 정상이 성탄절을 맞아 남북 키프로스 중간지대인 유엔 완충지대에서 만나 녹화한 공동 성명이 TV를 통해 흘러나왔다. 키프로스의 비무장지대(DMZ)격인 완충지대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분단의 상징이자 통일의 시발점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역사적인 공동 메시지에서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키프로스 공화국 대통령은 그리스어로 “새해에는 우리 터키계 키프로스인과 그리스계 키프로스인이 다시 통일된 나라에서 평화롭게 살기를 바란다”고 성탄 인사를 건넸다. 이에 아큰즈 대통령도 터키어로 “새해에는 모든 키프로스인에게 영구적인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고 화답했다. 양 정상은 이듬해 1월 2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나란히 참석해 ‘키프로스 통일’을 주제로 별도 포럼을 열고 국제사회를 향해 통일 지지를 호소했다.
무르익는 키프로스 통일 분위기
한반도를 포함해 지구 상에 몇 남지 않은 분단국가인 키프로스에서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다. 지난해 4월 아큰즈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급물살을 타고 있는 통일 논의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 정상은 통일 논의 재개 이래 매달 2, 3차례 공식 협상장에서 머리를 맞대며 사실상 큰 틀에서는 상당한 의견의 일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분단의 원인이 됐던 그리스와 터키라는 두 주변 강대국이 통일 논의에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분위기는 매우 우호적이다. 그리스와 터키는 물론 1960년까지 키프로스를 점령했던 영국까지 나서 경제 위기와 유럽연합(EU) 가입 등의 현안에 따라 통일을 지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키프로스의 경제위기는 통일을 추진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독립성이 강한 키프로스 공화국이 2013년 금융위기에 빠지면서 경제적인 이유로 통일 논의에 적극적이다. 국제사회의 공인을 받지 못한 북키프로스의 경우 사실상 터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 일원으로 참가하기 위해서라도 통일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2014년 오슬로평화연구소 키프로스 센터가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두 나라의 시장이 통합될 경우 키프로스 내 총생산은 2012년 200억 유로에서 2035년 450억 유로로 불어난다.
두 정상의 최근 행보에 대한 현지 반응도 뜨겁다. 터키 일간 사바흐는 이번 다보스포럼에서 공식적으로 '키프로스 통일' 포럼이 열린 것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초대했기 때문이라며 통일에 긍정적 신호라고 진단했다. 유엔 키프로스 담당 특사인 에스펜 바트 에이데는 “키프로스 양측이 직접 협상문을 작성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투표를 치렀던 2004년보다 현재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전했다.
터키의 결단과 재산권 문제 등이 변수
북키프로스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터키가 표면적으로는 키프로스 통일에 지지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국가 차원의 결단을 내리지는 않고 있다. 26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결단이 키프로스의 통일 논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도했다. 실제 에르도안 대통령은 표면상으로 2002년 국민투표를 통한 통일이라는 당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계획을 지지하고 있지만 북키프로스에 주둔한 터키 군의 철수 가능성은 아직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2014년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과 데르비시 에로을루 당시 북키프로스 대통령이 공동 합의를 내놓고 통일 논의를 이어가던 중에 터키의 개입으로 논의가 무산된 적도 있다. 그 해 10월 키프로스 남쪽에 위치한 아프로디테 천연가스 매장지에 터키가 탐사선을 보내자 남키프로스가 터키를 비판하면서 통일 논의는 중단돼 버렸다.
일각에서는 분단에 따른 재산권 보상 문제가 최대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하고 있다. 터키 일간 사바흐에 따르면 1974년 분단이 공고해진 이후 토지 등을 잃은 양측 주민들의 보상금으로 150억 유로(약 19조8,000억원)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됐다. 터키 이스탄불문화대학 국제정치연구소의 멘수르 아크균 교수는 “미국과 EU가 보상금 지원으로 수백만 유로를 약속했지만 매우 부족한 금액”이라며 "재산 보상에 100억 유로 이상이 필요한데 아직도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통일 협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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