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콘텐츠 개발 지원 등 명목
경제효과 따지지 않은 깜깜이 지원
지원 따른 게임업계의 사회기여 절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520억원을 게임산업 지원 예산으로 배정했다. 학교 시설 개선에 쓰였다면 전국 130개 학교 운동장에 인공잔디를 깔아줄 수 있는 돈이다. 그런 거액의 국민 혈세를 게임산업 지원에 투입, 게임업자들이 좀 더 매력적인 게임을 개발하거나, 게임을 대중에게 보다 쉽게 퍼뜨릴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쓰겠다는 뜻이다. 문화부는 예산 지원이 위기에 빠진 국내 게임산업을 되살릴 것이라고 기대한다. 설사 그렇다 해도, 게임이 혈세까지 쏟아 부어 지원해야 할 산업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물론 산업이 반드시 공익적일 수는 없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재화나 서비스가 반드시 인간에게 이로운 것만도 아니다. 담배나 술, 무기나 오락 산업도 버젓이 존재하고 발전할 수 있으며, 합당한 수익을 기반으로 세금 내고 일자리를 창출하면 산업으로서 가치는 충분하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통상 생산물이 공익에 반하는 산업에 대해 정부가 예산까지 직접 지원하며 육성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담배나 주류, 도박산업만 봐도 그렇다. 게임산업 예산 지원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임이 가상현실(VR) 등 미래형 영상 콘텐츠 기술이 가장 활발하게 적용되는 산업이라는 건 맞다. 게임 콘텐츠 개발을 위해 그런 신기술을 적극 응용해 노하우를 쌓으면 향후 VR이나 증강현실(AR) 기술 등을 활용한 제2, 제3의 산업발전에도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맞다. 하지만 그게 게임산업을 지원해야만 하는 필요ㆍ충분한 조건이라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VR 등을 활용한 영상 콘텐츠는 게임뿐만 아니라 당장 교육, 시뮬레이션 체험, 문화 영상물 등 게임산업보다 수십, 수백 배가 넘는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이 숱하기 때문이다.
업계가 주장하는 게임산업의 경제 파급효과도 그리 믿을 만한 게 아니다. 최근 강신철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K-iDEA) 회장은 “게임산업은 매출 1,000억원 당 1,800명의 고용 유발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은행 투입ㆍ산출 통계엔 그런 분석 자체가 없다. 통상 고용 유발효과는 한은 통계 상 해당 산업의 임금근로자수만을 따진다. 국내 20대 게임업체의 직접 근로자수는 기껏해야 1만 명 내외다. 지난해 매출을 10조원으로 치면 10억원 당 1명 남짓 고용한 게 고작이다. 한 걸음 양보해 전국 2만개 게임방 운영업자들과 가족까지 포함한 취업 유발계수로 쳐도 중후장대 자본재 산업의 취업 유발계수 8.3에도 미칠까 말까다.
산업 생산물이 필요악이라도 번 돈을 훌륭하게 관리하고 사회에 환원하여 공익성을 보강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노벨이 노벨상을 제정한 게 그렇고, 담배업체들이 막대한 수익을 들여 다양한 사회사업을 운명처럼 수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국내 게임업체들이 인상적 공익활동을 벌였다는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사회공헌은커녕 극소수 경영진과 고급 게임개발자들을 제외한 대다수 근로자의 평균임금이 제조업체보다도 훨씬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업체들은 자율적으로 건전게임문화 조성에 앞장서겠다며 입만 열면 규제완화를 요구한다. 업체들의 강력한 로비로 여성가족부는 모바일 게임에 대한 셧다운제 적용을 2년 간 유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게임업체들은 건전게임문화를 조성하기는커녕 유료 아이템 세일 판매, 게임 이력제 등을 통해 청소년들을 게임에 옭아매는 데 힘을 쏟아 온 게 현실이다.
게임산업 지원 예산편성 세부내역을 보면 VR 등 차세대 게임콘텐츠 개발ㆍ제작 및 R&D 지원에 190억원,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지원에 70억원, 지역기반게임산업 육성 등 게임산업 발전기반에 260억원 등이다. 게임업체들로서는 이래저래 정부의 중복 지원을 받기 십상이다. 기왕에 배정한 예산을 백지화할 수 없다면, 문화부는 건전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최소한의 규제에 나서는 한편, 지원에 걸맞은 사회적 역할을 다하도록 업계에 적절한 조건을 걸어 마땅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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